지난 1백60년동안‘세계 금융계의 지존’으로 군림해온 ‘J.P.모건 금융제국’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J.P. 모건 체이스가 엔론,K마트 등 대기업의 잇따른 파산과 아르헨티나 사태 등으로 큰 손실을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업에 손대면서 무리한 영업**
‘J.P 모건’ 하면 국제 금융계의 터줏대감을 일컫는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J.P. 모건은 '20세기 미국 금융계의 황제'로 불리며 1913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탄생 이전에 사실상 미국 금융체제를 경영한 인물이었다. 그는 혼자 힘으로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으로 인한 파국을 막아낸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죽은 뒤에도 수십년 동안 그의 이름을 딴 은행은 세계 최고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90년대 투자업을 포함한 종합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J.P 모건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
투자은행 체이스 맨허튼과 합병하면서 투자업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J.P. 모건의 성골(聖骨)들이 아닌, 체이스 맨허튼 출신들이 실권을 쥐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골드먼 삭스, 모건 스탠리 같은 기존 투자은행을 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투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출혈대출을 불사했다는 것이 경쟁업체들의 주장이다. J.P.모건은 협조융자와 파생상품 분야에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기선을 제압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자금이 풍부하다는 것이 오히려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J.P. 모건의 윌리엄 해리슨 회장이 "투자하길 잘 했다"며 한때 자랑했던 엔론이 파산하면서 이 은행의 판단력이 의심받기에 이른 것이다.
J.P. 모건은 유통업체 K마트, 통신업체 글로벌 크로싱의 주채권자이기도 했는데, 이들도 엔론처럼 최근 파산했다. J.P. 모건은 1백75억 달러의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유럽 케이블 TV회사 NTL의 주채권은행이기도 하다.
이들 대기업들에게 거액을 대출해준 J.P. 모건은 수억 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투자와 지분 투자사업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J.P.모건이 미국내 협조융자부문에서 37%를 차지한 대목도 해당회사들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큰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 투명성에 대한 신뢰 상실**
J.P. 모건은 공식적으로는 4억5천1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고 하지만, 최근 잠재손실이 무려 26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J.P. 모건측이 당초 부실채권이 9억달러 뿐이라고 밝힌 대목이 경영 투명성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투자액수라는 가장 기본적인 항목에서조차 투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은행의 경영행태와 정보 체계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J.P. 모건의 사외이사인 래리 보시디 하니웰 회장은 이 은행이 수익성 없는 자산과 부채를 빼돌리는 엔론의 편법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엔론으로 큰 피해를 본 J.P. 모건과 시티그룹 모두 엔론과 수년간 거래해온 관계이기 때문이다.
***S&P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전통적으로 이 은행의 전문영역이었던 파생금융상품 분야에서도 낭패를 보고 있다. 위장계열사인 영국의 마호니아라는 회사를 통해 엔론에 위장 대출을 해주었다는 혐의로 11개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한 것이다.
이번 소송이 있기 전에는 J.P. 모건이 마호니아의 실질적 소유주였다는 사실조차도 이 은행의 주주들도 모르고 있었다.
마호니아는 수억달러 상당의 석유와 가스를 거래했는데 이중 60%가 엔론과 거래한 것이다. 이 사업의 규모가 커지자 엔론은 보증보험을 들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보증채권에 대한 지급을 거절하고, 오히려 J.P. 모건이 거래를 통해 위장 대출을 해주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은행의 잠재손실 26억달러 중 지급 받지 못한 보험금이 10억달러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엔론 파산과 관련 J.P.모건 체이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J.P. 모건은 이밖에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술업종 회사 등에 대한 지분투자에서도 지난해 11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갖가지 악재가 겹친 J.P. 모건은 2001년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지시로 경영실적을 재평가한 결과, 수익이 1억5천5백만달러로 대폭 축소되었다.
이처럼 위기를 겪고 있는 J.P. 모건의 앞날에 대해 분석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4백30억달러나 되는 J.P. 모건의 막대한 자산을 얕보지 말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프루덴셜 증권의 분석가 마이클 메이요는 J.P. 모건 주식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놓고 있다. "회계상 문제가 곧 드러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J.P. 모건의 마크 샤피로 부회장은 "엔론으로 인한 손실은 보험으로 상당부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12월 "이미 알려진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어디까지 밝혀야 하느냐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러나“J.P. 모건의 주식을 갖거나 이 은행과 거래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더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며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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