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시체로 발견된 클리퍼드 백스터 전 엔론사 부회장(43)은 양심적 기업인인가, 아니면 부패한 사기꾼인가.
사인이 분명치 않은 엔론사 부회장을 둘러싸고 미국의 양대신문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정반대 논조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확실치 않으나, 두 신문이 정반대 방향의 보도를 함으로써 이번 싸움은 자칫 양사의 명예가 걸린 일대 언론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 백스터는 양심적 기업인**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27일 기사에서 백스터가 뉴욕 애머티빌에서 가난한 경찰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뒤 대기업 부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엔론 사태로 인해 ‘양심적인 간부’가 희생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뉴욕타임스지에 따르면, 백스터는 월가의 투자은행을 거쳐 91년 엔론사 입사한 뒤 2000년 6월 엔론사의 최고전략 담당 사장에 올랐고 그해 10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사교적인 인물이기는 하나 원칙에 강한 사람이어서 엔론사의 부정한 회계관행을 못 견뎌 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엔론사 파산 7개월 전인 지난해 5월 엔론사의 관련 회사인 LJM과의 불법거래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엔론사를 떠났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백스터는‘부도덕한 기업의 공범’일뿐**
그러나 같은 날짜의 워싱턴 포스트지는 백스터를 일종의 ‘부도덕한 기업의 공범’으로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났을 뿐이며 자기 이익은 충실히 챙겼다고 뉴욕타임스와는 정반대로 보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클리포드 백스터 전 엔론 부회장은 작년 5월 퇴직한 뒤 조용히 지내왔다. 그는 퇴직 전후 지난 10여년간 확보한 엔론의 주식을 매각해 수천만달러를 챙겼다.
엔론에서 부회장 자리는 '퇴출 대기석'이다. 백스터 이전 부회장들도 한때 엔론의 핵심인사였지만 최고경영자 자리를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뒤 이 자리를 거쳐갔다.
엔론의 기업 문화는 이러한 권력투쟁에서 지면 쫓겨나고, 승자만이 ‘수백만 달러를 챙길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게임장에 머물 수 있다. 백스터 이전에도 3명의 중역이 몇개월마다 회사를 떠났다.
엔론의 문화는 바로 '승자독식'이다. 엔론의 주가는 항상 상승곡선을 그려야 한다는 압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여서 경영진은 투자와 회계절차에서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전.현직 엔론 직원의 증언이다.
이때문에 매출을 부풀리고 늘어나는 부채를 감추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엔론의 석유가스발굴사업부를 맡았던 포레스트 호글런드는 "엔론이 지난 10월 3분기에 6억1천8백만달러를 손실을 보았으며,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엔론이 파산하리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엔론은 기름을 짜내듯 직원들을 '정유'했다. 간부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나 추진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회장이 밀어주는 대권후보에게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지 않으면 쫓겨날까봐 걱정했다.
지난 8월 엔론에 대한 심층보고서를 펴낸 피터 푸사로(컨설팅회사 글로벌 체인지 어소시에이츠 사장)는 작년 10월까지만 해도 엔론은 '강압적인 문화'를 자랑했다고 말한다.
엔론의 한 연례 보고서에는 "우리는 결과를 원할 뿐이다"는 구절이 있다.
***3천5백20만 달러 챙긴 백스터**
백스터는 제프리 스킬링 전 회장의 측근으로서 승승장구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법원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1998년 10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그는 3천5백20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백스터부부는 이 돈 일부로 자선재단을 설립하는데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엔론의 경영진들이 출세를 위한 경쟁을 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1978년 존스타운 집단자살극에서처럼 '엔론의 독'을 함께 마셔야 했다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외국의 에너지사업에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감행해 빚만 남긴 것은 백스터와 그의 전임 부회장들이었던 마크-저스배시, 서튼 등이었다.
스킬링의 지휘 아래 이 부채는 역외 회사와 계열투자사 등으로 떠넘겨져 일반투자자와 종업원들에게 사실상 은폐된 것이다.
지난해에 이르러 엔론의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엔론의 막대한 부채를 우려한 투자가들이 엔론의 신규사업에 자금을 제공하는데 주저하기에 이르렀다.
신규사업이 없어지면서 엔론은 장기계약을 당기 매출로 잡는 회계처리를 할 수 없었고,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자 엔론이 현금흐름이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5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이익으로 계상한 엔론 북아메리카 사업부는 백스트가 잠시 책임자로 있었던 곳이다. 이 회사의 전직 중역에 따르면 이 방법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회계기준을 위반하지 않은 회계조작 방법으로 자주 쓰이는 것이었다.
결국 “엔론의 무한질주에서 머뭇거리는 직원은 퇴출된다. 그것이 엔론의 문화였고 이것이 결국 엔론의 파산을 가져왔다”는 것이 워싱턴 포스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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