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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 구멍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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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 구멍 뚫렸다

JP모건, 시티 등 엔론사태로 큰 손실

엔론의 주채권 은행인 J.P. 모건 체이스와 시티그룹은 이번 엔론 사태로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
J.P. 모건은 지금까지 엔론 관련 손실이 4억5천6백만달러로 집계됐고, 시티그룹은 2억2천8백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내로라 하는 거물급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대형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미국의 엔론 사태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심층 분석했다.


***투자은행 시장의 패권을 쟁탈하기 위한 출혈대출**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미국 금융법의 허점에서 비롯됐다.
미국에서는 1929년 대공황 당시 거대은행들에 의한 주가조작이 횡행했다는 투자자들의 항의에 따라 1933년 상업은행, 투자은행, 보험회사 간 겸업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글래스 스티걸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 법이 폐지되면서 시티그룹 등 상업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투자은행 업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수합병의 주간업무, 컨설팅 등 투자은행 고유사업에서 이들 시티그룹 등의 비중이 골드먼 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등 전통적인 3대 투자은행보다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월가에서는 이처럼 비대해진 이들 은행 내부의 이해가 충돌했기 때문에 엔론사태가 발발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트래블러스(투자은행 살로먼 스미스바니의 모기업)와 시티뱅크는 98년 합병으로 오늘의 시티그룹이 되었다. JP 모건과 체이스 맨해턴은 2000년에 합병됐다.

이 두 금융그룹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출과 투자사업에서 다른 은행들을 압도해 나갔다.

이에 따라 경쟁업체들은 JP 모건과 시티그룹, 그리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도이체 방크, 스위스UBS 등 몇몇 유럽은행이 수익성이 보다 높은 투자은행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출혈대출'을 불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 은행이 출혈대출을 하면서도 이를 감출 수 있던 것은 대출 현황을 공시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 회계 제도 덕으로 알려졌다.
경쟁업체들은 JP 모건과 시티은행이 엔론으로부터 투자은행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대출기준을 무시하고 엔론이 과도한 차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엔론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에서 엔론의 채권자이면서 동시에 이 기업의 컨설팅사라는 점에서 JP 모건과 시티그룹은 내부적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엔론의 채권자로서 이들 은행은 엔론으로부터 자금을 최대한 회수하기 위해 엔론의 자산을 최대한 보존하려고 무리수를 두었을 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컨설팅사로서 엔론을 존속시키고 주주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위험한 전략을 추구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투자은행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대출기준을 낮추었다는 주장에 대해 극구부인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말 엔론이 보유한 무담보 대출을 담보 대출로 전환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컨설팅 사업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대하는 월가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마디로 못믿겠다는 것이다.

***금융업 겸업 금지보다 감시체제 강화가 더 바람직**

월가에서는 이에 최근 글래스 스티걸 법을 폐지한 것이 과연 옳았느냐는 논쟁이 새삼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에 대해 “새로운 금융법은 글래스 스티걸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는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이 기업상장과 관련한 주가조작혐의로 지난주 월가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벌금 3천만달러를 포함해 총 1억달러를 합의금으로 내놓게 된 사건도 투자자를 이용하는 것이 관행적으로 가능한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CSFB 사건은 동시에 월가의 투자 분석가들과 기업상장 관계자와도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와 함께 회계와 컨설팅의 법적 분리는 이번 기회에 강조되어야 할 사항이다. 금융컨설팅이나 대출과 달리 회계는 최대한 보호되어야 할 공익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엔론사태는 금융혁신의 한 과정”이라고 진단한 컬럼비아대 경제학자 찰스 칼로미리스는 "글래스 스티걸 법을 부활시키는 것보다는 완벽한 정보 공개를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업의 겸업 금지라는 직접규제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티그룹은 최근 트래블러스를 다시 분리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만큼 거두지 못했다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이전의 위기때의 미국 은행들과는 달리 JP 모건이 엔론사태로 큰 손해를 입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는 미국은행들이 진보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업다각화로 수익을 올리는 체제이기에 주가 폭락이나 회사의 이미지 손상보다는 나은 부실대출로 인한 손실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미국은행들의 체질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금융업 겸업 허용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내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감시하는 체제강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결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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