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초유 전 대법원장 검찰조사…'사법 치욕'의 날".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정재민 지음, 창비 펴냄)를 읽기 시작할 무렵 나온 일간지 헤드라인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날, 피의자로 조사받던 전직 대법원장이 헌정 역사상 최초로 구속되었다.
작금의 사태는 비단 그 당사자인 법관들과 법원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실체가 모호한 법관, 검사, 변호사를 아우르는 '법조 3륜'이라는 말을 꺼내들지 않더라도, 대법원 옆 서초동 현장에서 바라보는 법원의 이 위기는 법률가들의 위기로 보인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에 휩싸여있을 때, 우연히 전직 판사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형사소송 일반 절차를 따라, 판사가 법정에 나서기 전 어떤 상념을 갖는지, 소송의 첫 단계인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부터 증거조사를 진행하기까지, 그리고 변론이 종결된 후 실제 판결문을 작성하고 이를 선고하는 것까지, 각각의 흐름에 따라 해당 절차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저자가 실제 경험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변용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형사 재판에 임하는 판사의 마음을 고백한다.
판사의 인간적인 고백
시민들은 판사들이 완전무결한 존재이며, 그들이 내리는 판결 역시 어떠한 흠결도 없는 정확하고 완전한 것이 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존재 자체로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일'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완전무결을 지향하는 것과 그 결과가 진정으로 완벽하게 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저자는 그것을 재판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사실과 경험을 통해 이것을 반복하여 말한다.
법대 위에 앉은 판사 역시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과 증거들을 취합하여 불완전한 사실 관계를 토대로 심증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판 초기에는 정말 확실한 사실 같은데 재판이 끝나고 나면 그렇지 않은 쪽으로 입장이 바뀌게 되는 것을 수백 번 겪"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럼에도 자신이 판사였던 시절에 실체에 부합한 판결을 하기 보다 변론주의, 입증책임, 증거법칙 등 법의 잣대에 '기대어' 기계적 중립을 지키기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판결 실무와 관행에 대해 그는 이제 비판적인 입장에 서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판결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불분명한 증거와 소송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판결이 그것이다. 저자는 판사를 사직하고 법대를 내려온 후 이러한 점을 더 명확하게 깨달았다고도 고백한다. 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억울한 판결'이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판결'임을.
판결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들
특히, 많은 시민들이 판결의 결과만 놓고 비판할 때 항상 전제되는 사실들은 편견이 섞인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판사들은 판결을 내리는 데 무소불위의 힘을 사용한다.' '범죄를 저지른 나쁜 자들에 대해서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처벌을 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판사들이 시민의 감시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등등
법원을 오가며 경험한, 내가 생각하는 이에 대한 답은 이렇다. 판사들 역시 헌법과 법률, 상급심에 의해 그 자신의 판결이 교정당할 위험에 처해 있어 재량을 마음껏 사용하지 못한다. 범죄자는 범죄 자체로 피해자와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처벌 정도는 판사가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법률로 제한된 만큼만 허용되며, 범죄의 해악만큼만 처벌 받는 것이 정의에도 부합한다. 나아가, 판사들은 오히려 시민의 감시와 비판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어, 최근에는 여론이 자신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이다.
어떻게 하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판결을 내리는 처지에서, 판사들은 안간힘을 쓰며 오늘도 사건을 하나씩 처리해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 저자는, "당사자의 불충분한 증거 제시로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면 판사로서는 미안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변호사 역시 법원을 무대로 일을 하는 소송 주체이지만, 실은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블랙박스'에 가까운 것이고 때때로 판사의 판결문만 읽고 결과를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전직 판사의 저 고백은 어쨌든 변호사에게도 위로로 다가오는 것이다.
'법원'이 피고인석에 앉다
저자는 과거 판사로 일하던 시절,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직업적 소명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법정에 나가기 전 법복을 입으며 '내가 판사인가'라고 자꾸 묻는 장면은 그의 직업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보여준다. 당연히 판사이지만 그래도 판사인지 물으며, "판사면 당연히 판사인 것이지 자꾸만 자신이 판사인지를 묻는 판사가 판사인가"라고도 묻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가 법복을 입으며 판사임을 묻는 것은, 법관으로서의 자신이 헌법 제103조에 따라 오늘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자기 신문이 아니었을까.
전직 판사의 이러한 고백과 반성은, 법원 행정을 담당했던 고위 법관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그들은 어떤 자기반성과 고민에 가닿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판 독립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기계적 중립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훼손시켰다. 하루하루 힘들게 고민하며 재판을 하는 지방법원의 법관들이야말로 저 위의 법원행정처 판사들을 가장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책의 5부 '피고인석에 앉아' 부분에서, 저자는 판사를 사직하기 전 피고인석에 앉아보고 싶어 그 자리에 잠시 있어보았다고 한다. 연수원 시절 검사석, 변호인석에도 앉아보았으니 피고인석에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단다. 그리고, 이번 '사법부 재판 거래' 파동에 대해 "평범한 전직 판사"로서 국민들 앞에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표한다.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만으로 끝날 수는 없다. 이제 사법 행정을 담당했던 법관들은 과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피고인석에 앉아'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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