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부시 행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엔론게이트’는 한국의 대우사태와 여러모로 닮은꼴이 많다.
각각 미국과 한국 기업사상 최대의 파산기록을 세웠다는 점, 정치권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점외에 악질적 분식회계로 인해 회계법인의 신뢰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특히 월스트리트는 엔론사태로 미국 회계법인의 신인도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된 점을 크게 가슴 아파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그동안 포항제철등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려 할 때마다 "한국 회계법인이 만든 자료는 믿을 수 없다"고 주장, 국내기업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미국 회계법인들에게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며 회계감사를 맡겨야 했다. 한 예로 주택은행의 경우 미국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 회계감사를 맡기고 있다.
이처럼 콧대가 높던 미국에서 세계 5대 회계법인(빅5)중 하나로 군림하던 앤더슨이 엔론의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혐의를 받는 데다가, 엔론 감사자료마저 불법적으로 파기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월스트리트의 높은 코가 축 늘어진 것도 당연하다.
***앤더슨, 수십억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으로 문 닫을 위기에 직면할듯**
엔론의 감사를 맡았던 앤더슨은 지금 미국의 회계제도가 엉망이라는 문제를 드러내면서 자칫하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부실회계에 대한 조사를 받던 앤더슨이 엔론감사 관련 서류 수천건을 파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서류 파기가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소환장을 받기 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지배적 의견이다.
미국 하원 에너지 상무 위원회의 빌리 타우진 위원장은 10일(현지시간) "회계법인 앤더슨이 엔론 감사와 관련된 서류 수천건을 파기했다"면서 “이같은 행위가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직원은 해고되어야 할 것이며, 이같은 행위가 고의적이라면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도 이같은 서류 파기 행위는 "극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회계 법인들은 감사 기록을 최소한 3-4년은 보관하는 것을 관행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블룸버그 통신은 앤더슨이 막대한 손해를 본 엔론의 주주들로부터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과 정부로부터 엄중한 행정조치를 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우 계열사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동회계법인이 2000년 11월 징계를 받아 해체됐으며, 회계부실책임과 관련해 직원이 구속되는 사태로 비화한 바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법무부가 엔론의 회계부실 관련 특별수사 의지를 밝힌 다음날인 10일(현지시간)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 회계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부시의 발언이 엔론 사태로 인해 기업 재무제표 공개 및 외부감사 과정에서 광범위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앤더슨, 상습적 부실감사**
사실 앤더슨은 엔론뿐 아니라 지난해 엔론을 포함한 3개 회사에 대한 부실감사로 잇따른 비판을 받아왔다.
시카고 트리뷴지에 따르면, 앤더슨은 지난해 선빔사의 주주로부터 1990년대의 부실감사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하자 1억1천만 달러를 배상하기도 했다. 이같은 금액은 언스트 앤드 영이 1999년 센던트사에 대해 3억3천5백만달러를 물어낸 이래 증권관련 소송에서 회계법인이 지불한 배상금중 최고 기록이다.
앤더슨은 또한 지난해 6월 쓰레기 처리업체 웨이스트 매지니먼트사의 감사 과정에서도 부실혐의로 7백만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이 역시 미국 5대 회계법인에게 떨어진 벌금으로 최고액이었다.
리만 브라더스의 회계 분석가 봅 윌렌스는 "지난날 앤더슨은 회계업무의 권위를 상징했었으나 지금 앤더슨 하면 엔론을 떠올리게 된다"고 말한다.
엔론이 갑자기 파산하게 된 데에는 앤더슨의 엉터리 회계감사가 결정타를 날린 것이란 점에서 앤더슨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엔론 사태가 일어나자 앤더슨측은 엔론이 부실을 숨겼고 이를 파악하는데 실패했을 뿐이라고 둘러댔지만, 앤더슨이 엔론의 내부감사까지 맡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앤더슨으로서는 더이상 변명할 말이 없어졌다.
앤더슨은 지난 10년간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았으며 2000년도에만 5천2백만달러를 받았다. 이 금액 중 2천5백만달러는 감사 수수료이며 나머지 2천7백만 달러는 컨설팅과 내부 감사 비용으로 청구된 것이다.
***앤더슨, 엔론의 회계감사뿐 아니라 내부감사까지 맡아**
뉴스데이닷컴은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은 앤더슨 사무실은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엔론 본사의 한 개층 모두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매주 엔론으로부터 1백만달러를 받고 있었다고 '앤더슨과 엔론의 유착' 내용을 심층보도했다.
엔론의 주식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증시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우량주였다.
그러나 지난 9월 중순 재검토 과정에서 97년 이후 5억8천만달러의 이익이 과다 계상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계열사인 금융회사에서도 12억달러의 추가손실이 새로이 밝혀졌다.
이 정도 부실은 엔론의 연간 매출 규모나 6백억달러의 자산을 감안하면 하루아침에 파산할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뢰의 상실'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주주와 투자자들은 엔론의 경영상태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주식 투매에 나섰고, 은행들은 채권 회수 압박을 가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초 85달러였던 주가는 1달러 수준으로 폭락하고, 40일만에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BBC 방송은 2만명에 이르는 엔론의 종업원들이 은퇴연금으로 산 엔론의 주식을 회사가 팔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은퇴연금을 날렸다고 보도했다.
앤더슨(올해 1월부터 아더 앤더슨에서 사명 변경)은 1913년 노스웨스턴대 교수였던 아더 앤더슨이 시카고에 설립했다. 앤더슨은 1천4백개 공기업과 수천개 민간기업을 고객을 상대로 지난해에만 9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84개국 3백90개 지사에 8만5천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현 조셉 베라디노 회장은 코네티컷주의 페어필드대 출신으로 1972년 앤더슨에 입사한 뒤 지난해 1월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앤더슨 컨설팅은 지난해 1월 앤더슨과 그룹관계를 청산하고 액센추어로 이름을 바꾸어 지난해 6월 상장했다. 이에 따라 회계법인으로서의 앤더슨의 서열은 5위로 내려앉았다.
이런 과정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앤더슨의 운명을 암시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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