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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기업 35~45%가 재벌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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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기업 35~45%가 재벌소유

창업가문 반대로 HPㆍ컴팩 합병 무산

미국에서도 재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창업자 자제들이 외형상으로는 소수의 주식밖에 안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재단의 주식을 동원해, 합병 등 회사 주요결정을 뒤엎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주주가치 극대화'를 외치며 실제로는 재단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식 재벌'의 실상을 파헤친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최근호 기사를 소개한다.

휴렛팩커드(HP)의 지분을 10.4% 보유하고 있는 데이비드 & 루실 패커드 재단은 7일 "휴렛팩커드와 컴팩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재단 이사장 수잔 팩커드 오르는 성명을 통해서 "재단은 휴랫팩커드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HP 창업주 자제들의 반란**

재단의 발표 직후 휴렛팩커드와 컴팩측은 "이번 결정이 실망스럽다"고 밝히고 "두 회사간의 합병은 여전히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휴렛, 패커드, 포드 가문을 예로 들면서 창업자 가문이 조그만 지분을 갖고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인만큼, 이로 인해 여성CEO(최고경영자)로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칼리 피오리나가 자리를 걸고 추진한 휴렛팩커드와 컴팩간 합병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피오리나도 퇴진하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휴렛팩커드 창업자의 아들이자 HP 이사직을 맡고 있는 월터 휴렛은 지난 6월 컴팩 컴퓨터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CNET 뉴스에 따르면, 그 시간에 그는 보헤미안 클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CNET는 “보헤미안 클럽은 부유한 사업가, 정치인, 영향력 있는 예술가 등이 회원”이라고 전하면서 “부잣집 아들이 그의 회사가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을 하는 동안 밖에서 놀고 있었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회사의 결정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해지자 뒤늦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는 HP 임원들에게 “기득권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컴팩과 HP 합병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합병에 따라 자신의 지배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반대였다. HP지분 5.2%를 갖고 있는 휴렛 가문과 그의 자선재단은 합병에 반대표를 던질 게 확실시된다.

HP의 또다른 창업자의 아들 데이비드 패커드도 이에 동조할 것으로 보인다. 패커드 인문연구원을 이끄는 그는 1.3%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의 친척인 수잔 패커드 오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 루실 패커드 재단’은 10.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두 창업자 자제들이 연합전선을 펼 경우 합병결렬은 확실시된다.

***미국 5백대기업의 35~45%를 창업자 가문이 지배중**

대형 상장회사들 중에는 HP처럼 창업자 후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회사들이 의외로 많다.

월마트의 경우 롭 월턴과 존 월턴(이 회사의 전설적인 창업주 샘 월턴의 아들들)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롭 월턴은 이사회장까지 맡고 있다.
73년전에 창업된 모토로라는 창업자 손자인 크리스 갤빈이 회사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노드스토롬은 창업자 가문이 2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창업자 우드러프 가문이 아직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새로 창업된 회사들 중에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뉴비즈니스의 기원과 진화>의 저자 아마 바이드는 "델 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버크셔 해더웨이, 홈 디포 등 유명회사의 주식이 창업자 가문이나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5백대 상장기업 중 '영향력’을 정의하기에 따라서 창업자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업들이 35~45%나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보통 때 창업자 가문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시카고 소재 로욜라대 앤드류 키트 ‘가족기업 센터’ 소장은 “회사 경영진의 내부 분열이 있거나, 창업자 가문의 이익에 위협을 느낄 때 그들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포드 자동차의 경우 포드 가문이 의결권을 가진 주식의 40%를 갖고 있는데, 지난 10월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윌리엄 클레이 포드가 당시 최고경영자 자크 나세르를 해고하고 자기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좋은 사례다.
포드 가문에서는 지배력을 유지하기 쉽도록 몇몇 주주에게 특별 의결권을 부여하는 지분 구조를 구축했다.

미디어 그룹 중에 이런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슐츠버거 가문이 88%의 의결권을 갖고 있지만 클래스 A 주식은 겨우 17%만 보유하고 있다.

회사의 이사회나 인사위원회에 창업자측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경우에도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IBM의 왓슨 가문은 지분이 미미한데도 놀라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이거 인포메이션 그룹의 분석가 롭 엔덜은 “휴렛팩커드의 합병건에서 창업자 가문의 승인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들이 반대하면 합병은 거의 불가능하다.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고 전망했다.

***창업주 문화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포드나 휴렛팩커드의 경우 창업주의 문화가 회사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큰 힘이 되는 사례”라면서 "반드시 창업주 가문의 영향력이 큰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HP의 칼리 피오리나의 책임도 적잖기 때문이다. 그녀는 CEO를 맡으면서 HP가 초라한 차고에서 출발했다는 내용이 담긴 광고를 연속적으로 냈었다. 그러나 그후 그녀의 경영은 HP의 창업정신과 상당히 동떨어졌다.

정보통신 거품이 빠지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S&P 평균주가보다 HP의 주가하락 폭이 컸으며 경쟁사인 애플, 선마이크로시스템, IBM보다도 두배나 빠졌다.피오리나는 이처럼 경영이 악화되자 올 들어 6천여명을 해고했다. 62년동안의 휴렛패커드 역사상 최대규모의 감원이었다.

직원들은 감원규모보다 감원 방식에 더 분노하고 있다.
감원이 있기 한달 전 피오리나는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임금삭감을 요구했고 직원 8천여명이 여기에 동의했다. 그 결과 휴렛패커드는 1억3천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긴축정책 직후 감원이 행해진 것이다.

게다가 피오리나 회장은 "HP와 컴팩의 합병이 성사될 경우 경영진들은 5천5백만달러의 특별상여금을 받을 것"이라고 미국증권위원회에 신고서를 접수했다. 회사 안팎에서 불만이 터지자 그 중 8백만달러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창업주 자손인 데이비드 패커드는 "휴렛팩커드는 적어도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경영은 하지 않았다"면서 "오늘날 휴렛팩커드를 있게 한 것은 팀웍으로 뭉쳐진 직원들의 충성심"이라고 피오리나 회장의 경영을 비판했다.

창업자 자손들의 경영관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전문CEO들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없는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는 게 HP사태가 가르쳐준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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