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수줍음 많은 분이었다. 사람들 앞에 좀처럼 나서질 않는 성격이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러나 10년, 어머니의 시간은 모질게 흘렀다. 아버지가 불길 속에서 떠나고 아들이 감옥에 갇힌 뒤 무려 10년 동안 그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경주행 KTX에 몸을 실었다. 반갑지 않은 여정이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만 같다. 아직도 참사가 어떻게 일어났고 은폐되었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책임자 처벌도 없었다. 무리한 진압 작전을 지휘한 책임자는 총영사가 되었다가 공기업 사장이 되었다가 국회의원이 됐다. 공소시효 7년이 끝나고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배제에 관한 특례법’이 뒤늦게 발의됐지만 아직 미흡한데다 이마저도 국회에 묶여 있다. 그 법이 통과돼야 참사의 책임자 처벌도 가능해진다. 6명이 죽은 사건이다.
참사 8년만에 정권을 바꿨지만 촛불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진상조사도 쉽지만은 않다. 경찰의 조사위가 지난해 '과잉진압'과 '위법한 여론 조작'을 인정한 반면, 검찰의 과거사위는 멈춰 있는 상태다. 지금은 고위직이 된 당시의 특별수사본부 검사들에 의한 외압설이 돈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막을 수 있는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도 18대 국회에서부터 발의됐지만 여전히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법안의 소관 상임위에는 참사의 책임자가 국회의원으로 앉아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머니가 투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뜨겁고도 냉정한 강골 투사가 되었다. 뫼비우스의 띠같은 현실에서 어머니는 그렇게 투사가 되었다.
용산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8일 오전 유가족과 경북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경주의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 사무실을 찾아 김 의원의 제명과 처벌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의 짧은 일정 속에서 만난 전재숙-이충연 모자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았다.
김석기 의원은?
2009년 용산4구역 철거민 진압 작전을 총괄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당시 경찰청장 내정)은 무리한 작전 강행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을 희생시켰지만 법적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이후 일본 오사카 총영사를 거쳤고 2012년 경주에서 19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직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됐고 2016년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의 상임위는 국토위. ‘강제퇴거 금지에 관한 법률안’은 국토위 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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