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가요?"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최저임금 이슈는 2018년 한 해 동안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가장 끈질기게 잡아온 이슈였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면, 최저임금 1만 원은 모든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었을 정도로 강하게 주장된 구호였고,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으로 기대 받기도 했다. 공약대로 올린 최저임금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바람이 불자 바람을 따랐고, 바람을 따랐더니 역풍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에 던져야 할 것이 아니라, 이 바람은 어디서 시작됐고, 어떻게 돛이 올랐으며, 왜 역풍을 맞게 되었는가에 던져져야 할 것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군소후보의 이색공약에서 정부 정책으로
'군소후보의 이색공약'. 2012년 대선에서 기호 7번 무소속 김순자 후보가 내세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에 대한 언론의 평가였다. 김순자 후보의 선거운동 본부 인사들은 대선이 끝나자 알바연대를 조직하여 최저임금 1만 원 바람을 키워나간다. 광장에서 외쳐지는 1만 원 구호는 점차 커져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요 정당들은 앞 다투어 이 바람을 정치의 영역으로 불러온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정치 바깥에 머물던 1만원 구호를 국회 안에서 울렸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도 1만 원 바람을 맞는다. 2015년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서 비주류 후보로 알려졌던 이인영 후보는 최저임금 1만 원이 "급진적이라면 급진적으로 가겠다"며 그 바람을 고스란히 자신의 돛을 불리는 순풍으로 삼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당시 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의 반응이다. 문재인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동조하지만, 1만 원 구호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민주당의 당론은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라며 인상에 대한 지지 의사는 밝히지만, 1만 원 구호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인상을 버틸 수 없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는다. 또한 "최저임금의 목표치를 7천 원대"로 제시하며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의 지원책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결국 민주당과 문재인 대표도 2016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1만 원 구호를 받아들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뤄나가겠다는 단서를 붙인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라는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1만 원이라는 구호는 더욱더 커져나가고 2020년까지라는 목표가 추가된다.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일찌감치 202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약속한다. 안철수 후보는 처음에는 경제성장률과 임금상승률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신중론을 펼쳤으나, 선거기간을 거치며 2022년까지로 약속하게 된다. 문재인 후보는 이때에도 1만 원 달성 시기에 대해서는 공식적 언급을 자제하지만, TV토론을 기점으로 2020년을 최종적으로 약속하게 된다.
2017년 5월 대선이 끝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8월까지 2018년도의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했다. 최저임금 1만 원 바람은 이미 태풍이 되어 있었고, 정부는 그 바람을 집권 초 진보적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순풍으로 충분히 활용했다.
결국 최저임금은 공익위원이 표를 몰아준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2017년 대비 16.4% 상승한 것으로, 2020년까지 1만 원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수준보다 더 큰 폭으로 인상률이 결정된 것이었다. 5년 전 군소후보의 이색공약이라 평가 받던 구호는 날 것 그대로 정부의 정책으로 집행되었다.
'정치의 공간'을 압도한 '운동의 구호'
이때부터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에서 이해관계의 한 축이었던 자영업자의 반발은 누구나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도 임금도 못주면 문 닫아야지'라며 적폐로 모는 분위기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 원에 반대했던 한국의 자영업자도 어려운 형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IMF 이후 자영업 창업은 정부의 실업대책 중 하나였고, 이로 인해 퇴직 후 갈 곳 없는 이들이 자영업으로 몰렸다. 손님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가게 수는 계속해서 늘며 공급이 포화 상태였다. 또한 한국의 자영업자는 상당수가 영세 사업자이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인건비가 실질적으로 얼마가 오르던 간에, 이미 지고 있던 짐이 무거웠기 때문에 나뭇가지 하나에도 다리가 휘청거렸다.
역풍은 점점 커지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자영업자들은 곧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은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26%를 차지하며,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합치면 669만 명에 이른다. 결국 '2020년까지 1만 원'이라는 구호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최저임금 공약은 자영업자 숫자만큼의 상처를 정권에 남기고 말았다. 결국 정부에서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공약을 공식으로 철회하고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1만 원이라는 구호가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달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최저임금 1만 원에 반대되는 이해관계와의 조율, 피해를 보는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 이해관계 조율과 정부의 지원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한 속도 설정 등, 광장의 열정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정치의 공간과 민주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의 공간에서 다양한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책임질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내는 것은 정당의 역할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저임금 1만 원 구호가 정치로 들어올 때 이를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책임 있는 대안으로 다듬어낼 수 있었던 기회는 세 차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주요 노동조합과 정의당이 1만 원 구호를 정치로 끌고 들어온 순간이며, 두 번째는 민주당이 수용한 순간이며, 마지막 세 번째 관문은 집권 후 실제로 정책이 집행되기 전까지의 순간이다. 물론 이 세 번의 기회 모두 광장의 열정을 책임성 있게 다듬어낼 수 있는 기회이긴 했지만, 특히나 아쉬운 건 민주당의 경우이다.
첫 번째 관문인 정의당은 민주당에 비하면 소수 정당이다.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의 역할보다는 현실적으로 1만 원 구호가 갖는 여론 정치와 바람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세 번째 관문의 경우도 집권 후 2~3개월 안에 바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했고 충분히 재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 123석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으로 언제든 집권할 수 있는 준비와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 '대안정부'였다. 대안정부의 대안은 집권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만큼이나 실현 가능해야 하며, 설명 가능해야 하며, 책임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안정부가 집권정부가 되는 순간 대안으로 불렸던 것들이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민주당마저 운동의 구호를 더 책임 있는 모습으로 다듬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대안정부의 취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소상공인 지원책을 병행하면서, 최저임금을 현실 가능한 수준으로 상승시킨 후, 장기적으로 1만 원까지 올려가겠다는 당시 문재인 대표의 현실적 판단은 왜 지켜지지 않았고, 이를 뒷받침할 더 구체적인 대안은 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시민들에 뿌리 내린 정당이 만드는 책임 있는 대안
대안정부의 대안이 정말 실현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전문가의 머릿속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정당을 이루는 지지기반으로부터 조직화되고 조율된 의견이라는데 있다. 그리고 그 조직화된 의견이 한 정당의 정견이 되어나가는 과정에서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게끔 공익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당시 대안정부였던 민주당 안에서는 현실적인 이익에 대한 주장들이 당 안에서 활발히 돌아다녔어야 했다. 예를 들면 지역의 자영업자들의 목소리가 지역위원회나 지방의원을 통해, 또는 당의 각 직능위원회를 통해 논의되었어야 했다. 또한 이들의 목소리가 단순히 건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을 움직이는 힘을 가질 수 있게끔 조직되어야 했다.
이를 통해 정당은 자기 조직의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을 토대로 세부적 대안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역량을 갖춰야 했고, 혹 상충되는 이해가 있다면 조율된 절충안이 만들어져야 했다.
하지만 정당이 현실에 디딘 발은 그리 단단하지 못했다. 이해당사자 집단의 목소리는 당 안에서 힘을 갖지 못한 채 유리되어 있었거나, 혹은 일부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해도 외부에서 불어오는 구호의 바람을 견뎌 내거나 정책 대안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체력은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미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정권 지지층의 한 축이 무너져 내렸다.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잃은 셈이다.
앞으로도 구호가 일으키는 바람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 중에는 진보적 색채가 너무나 선명해 내 돛의 순풍으로 삼고 싶은 매력적인 바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호를 현실에 실현시킬 책임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정당이 없다면 결과는 반복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의 제도일지라도 구호가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시행되었다가, 다시 1년을 못가서 좌초되는 운명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더 공들여야 하는 것은 광장의 열정을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만들어내는 정당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일이다.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들이 광장으로 나가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연결되고, 조직되고, 조율되어서 공익으로 승화되게 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다. 더 단단하게 현실에 발 디디게끔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항의가 가능한 체제라는 소극적 이해보다 좋은 대안을 실현시켜나가는 통치 체제로 이해할 때, 책임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정당의 존재 유무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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