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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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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2>

'쓰루' 김학렬<下>

이 글에 나오는 ‘영감’은 지난 72년 재직시 췌장암으로 타계한 고 김학렬(金鶴烈)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를 가리킨다. ‘영감’의 일대기를 종횡무진 엮어간 사람은 그의 부인 김옥남 여사이다.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던 부부답게 김여사 는 고인의 뚜렷했던 족적을 세상에 길이 남기고 싶어했다. 이 이야기도 미망인의 그런 노력이 있기에 기록 자체가 가능했다. 편집자

워낙 우리 영감은 입이 빠르지 않았나.
이후락씨하고는 이런 악연이 있어. 아마 대통령선거 때였는가 봐. 청와대에서 박대통령 하고 우리 영감 하고 이후락씨 하고 당시 KCIA(중앙정보부) 원모 국장 등 다섯 명이서 1백만원씩 내고 지지율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는기라.

영감은 60여%라고 했고 HR(이후락 중정부장의 약칭)는 80% 넘을 자신이 있다고 했어. 서로 맞다 틀리다 하다가 영감이 “중앙정보부장이 속이면 쓰나”했다는기라. HR은 잔뜩 영감을 노려 보았지.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있어 집안에 도둑이 들었어. 훔쳐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서류같은 것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뭔가 찾다가 도망간 흔적인기라. 그 다음날에도 또 도둑이 들어왔어. 잔뜩 긴장했지. 아마도 무슨 비리를 찾는 게 아닌가 추측을 했지. 두 번씩이나 도둑이 들어온 것을 보면 꽤 집요하고 조직적이구나 생각했던지 영감도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었어.

그러더니 “아, 이거구나”하고 작은 메모지 하나를 나에게 주며 어디다가 숨겨 놓으라고 하는기라. 그걸 돌돌 말아서 콜드크림 통 속에 묻고 덮어버렸지. 자세히는 몰라도 그 당시 정치자금중 상당 부분은 미국 쪽에서 차관도입 등과 관련해서 비밀리에 들어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과 관련된 리스트 같았어. 박 대통령도 믿을 곳이 없다고 보았던지 영감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보여지고, 아마 그 냄새를 맡은 HR이 ‘공격’을 한 게 아니었겠나 추측했지.

세 번째 날 밤에 영감은 뭐라고 글씨를 쓴 머리띠를 하나 두르고 잠을 자. 그래 보니까 ‘도둑선생에게. 당신들이 찾는 서류는 나한테는 없네. 주인 백’ 했는기라. 다음날부터 도둑의 발길이 뚝 끊이지 않았겠나.

***점심값이 없어 밥을 굶었던 경제기획원 관료들**

관료사회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면이 있는기라.
우리 영감 자랑 같지만 공직관은 뚜렷했던 사람이지. 하루는 돈 1백만원을 급히 준비하고 하더니, 그걸 여러 개의 봉투에 나누어 보내달라고 전화를 걸었어. 나중에 들어보니까 “경제기획원에도 점심시간에 밥 안먹고 바둑이나 두거나 중앙청으로 산책 나가는 부하들이 많아. 해서 알아보니까, 점심을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기라. 이런 청렴한 공무원들에게 점심값이라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기라.

1.21공비 침투사건때 영감이 상당히 격앙이 되어 들어온 적이 있어. “와 그러노” 하니까 영감은 “혹시 불행한 사태가 닥치더라도 ‘나 부총리 부인이다’하고 떳떳이 죽으라”고 해.

“무슨 소리고” 했더니 어떤 장관 집이 보따리를 싸들고 피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열불이 났던 거라는기야.


***‘가요가이’를 뚫어 완성한 포항제철 건설**
<사진1>

영감이 가장 열성적으로 한 일은 포항제철 건설이었제 아매. 결국 그 때문에 죽음을 재촉하기도 했지만.
일본은 지금이나 예나 다 막후에서 움직이는 세력들이 있는기라. 제철을 쥐고 흔드는 곳은 가요가이(火曜會議)’였제. 가요가이는 스미토모, 닛산 등 5개사 연합회의인데 쇳덩이만 파는 장사꾼들이 아닌기라. 정치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석유같은 전략상품의 물동량 조절, 가격담합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말하자면 재벌급 집단회의인기라.

박충훈(김학렬씨 전임 경제기획원장관)씨가 실패하자 포철작업이 영감에게 떨어졌어. 일본쪽 인맥을 통해 영감은 가요가이를 물고 늘어졌지. 그쪽 사람 얘기로는 영감의 직관력, 재치와 해학에 크게 반했다더란 얘기 아이가. 그래 그쪽에서도 “니 장관되면 해 주꼬마”했다고 영감은 신나 했지.

평소에도 영감은 재치가 번뜩였고 유머를 즐겼어. 그런데 잘 잊어버려. 그래 수첩에다 ‘Y담’ 나오면 일일이 적어와서 그걸 다시 영어로 번역하고는 몇 번씩 연습까지 하곤 했던기라.

72년 췌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 영감은 “낸 포철 때문에 병들었다. 이걸 한 백년 뒤에나 세상이 알아줄까”했제. 나를 위로할려는 말같이도 들렸지만 영감은 “사람 오래 살면 안 좋다”고 되뇌이곤 했지.

그런데 영감 죽고 나자 열불날 일이 생겼어. 포철 기공식때 현관에 붙은 사진에서 우리 영감 얼굴을 싹 잘라낸기라. 화가 나서 청와대 육 여사에게 전화를 안했겠나. 얼마 뒤 박 대통령이 전화를 했어. 영감 사진을 잘라 없애라고 한 것은 자기가 시킨 일이 아니라카더군. 그리고는 “김 부총리 동상 하나 세워주면 될 것 아닙니까”하고 하하 웃더라구.

지미, 죽은 사람 재수없다카문 돈에 그려있는 세종대왕도 몽땅 없애버려야 할 것 아이가. 나중 얘기는 포철 책임자가 우리 영감얼굴을 죽은 사람 재수 없다고 사진에서 잘라냈다는 거 아이가.

***화장실에 ‘참을 인(忍)’자 써놓고 인내**

<사진2>

영감은 성질이 칼날에다 참는 일이 없어. 그래서 일화도 많이 남기고 남 가슴에 못박는 소리 많이 했지. 본인도 그걸 아는지 참을 ‘인(忍)’자를 변소에 써붙이고 많이 용을 쓰지 안했나.

난 아들 넷을 키웠어. 셋은 진짜 우리 아들이고, 하나는 우리 영감이야. 마누라겸 누나겸 어머니로 살았어. 참 불같이 살다간 양반이제. 영감이 입버릇처럼 쓴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집 가훈은 ‘좋아, 좋아’야. 우리집 손자놈들도 그래서 ‘좋아,좋아’ 안하는가.

손자놈이 “좋아, 좋아”가 뭐야 하고 물어. 그러면 “좋아, 좋아가 좋아다”하지. 울지 않고 남에게 지지 않는기라 일러 안 주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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