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나오는 ‘영감’은 지난 72년 재직시 췌장암으로 타계한 고 김학렬(金鶴烈)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를 가리킨다. ‘영감’의 일대기를 종횡무진 엮어간 사람은 그의 부인 김옥남 여사이다. 금실이 좋기로 유명했던 부부답게 김여사 는 고인의 뚜렷했던 족적을 세상에 길이 남기고 싶어했다. 이 이야기도 미망인의 그런 노력이 있기에 기록 자체가 가능했다.
해방후 고등고시(요즘의 행정고시) 1회로 관직사회에 입문한 이래 박정희 정권이 본격출범한 지난 63년부터 상공부 차관, 재무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기획원장관 등을 거쳐 72년 재직시 타계하기까지 김 부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한국주식회사’의 경제개발을 기획하고 견인한 불도저형 관료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부총리 취임시 자신의 방 칠판에 ‘종합제철 건설’이라는 글씨를 크게 써놓고 “포항제철이 완공되거나 내가 퇴임하기 전에는 절대로 지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로 포철 건설에 집착, 마침내 그 목표를 달성한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았다. 실제로 포철 건설후 비로소 조선, 자동차, 방위 등 각종 기간산업이 가능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그의 자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김 부총리의 생존시 별명은 ‘쓰루’였다. 쓰루는 학(鶴)의 일본식 발음. 이름 가운데 글자가 鶴인 탓도 있으나, 생존시 학같이 고고한 동시에 워낙 독설가로 유명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사가 동아일보와 함께 외환.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8월 중순 2,000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역대 한국 경제관료 베스트 5’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김학렬 부총리는 남덕우 총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나라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국민들이 그 존재가치를 새삼 떠올리는, 한국관료사상 드물게 ‘성공한’ 경제관료인 셈이다.
지금도 98년 위기 못지않게 경제가 어렵기란 마찬가지다. 이럴 때 미망인의 육성을 통해서나마 김학렬 부총리의 생존시 꼬장꼬장했던 모습과, 그 무렵 점심을 굶으면서까지 국가경제를 위해 밤새워 일했던 청렴한 경제관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이 글 곳곳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 장기영 부총리, 삼성 이병철 회장, 'SK' 김성곤 회장,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 경제개발시대 한국을 좌지우지했던 거물들의 알려지지 않은 뒷 얘기와 정경유착, 권력투쟁의 현장도 담겨 있어 주목할 만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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