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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리포트 <上>

불황 원인은 합리적 투자 지출 위축

전미경영학회(NABE)는 석달에 한번씩 계간지 비즈니스 이코노믹스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 4월에 발간된 봄호에서는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진 일본경제'라는 논문이 실려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 논문은 11년째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불황을 지난 30년대 세계가 경험했던 '유동성 함정'으로 해석하며 일본과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국가들에 대해서도 같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어 국내 정책집단과 연구소에서도 정독된 논문이기도 하다.

필자인 리처드 쿠는 일본 노무라(野村)연구소의 수석 경제분석가다. 노무라 연구소에 오기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일했던 그는 일본의 TV와 의회 등에서 경제정책 토론에 자주 출연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를 나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박사코스를 거친 그는 일본경제에 관해 5권의 저서를 냈으며 현재 일본 와세다 대학의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본지는 이 논문이 최근 유동성 함정 위기에 직면한 국내경제를 읽는 데에도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 전문을 번역해 두차례로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사라진 국부 1천조엔**

일본의 경제불황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에 따라 구조적 개혁 없이는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까지 단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90년대 일본의 경제불황을 순전히 구조적 문제로 돌리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경제불황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구조적 문제들은 수십년부터 존재했던 것이기에 80년대말까지 잘 나가던 경제가 90년대 들어 갑자기 발전할 힘을 잃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불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 기업들의 재무구조 상태를 살펴봐야만 한다. 세계 제2차대전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일본경제는 두 축에 의존해 움직여왔다. 가계 부문에서 높은 저축률과 기업 부문의 높은 투자율이다. 풍부한 일본의 저축자본은 일본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주식시장도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저축과 투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일본경제가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다시 일어선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일본의 자산가치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가하락에 이어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1천조엔(우리돈 1경1천조원)에 해당하는 국부가 사라졌는데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년분에 해당한다.
상업용지 같은 실물자산은 상한가의 8분의 1 가량 떨어져 경제에 큰 충격을 던졌다. 현대 산업선진국으로서 경제 규모에 대비할 때 이처럼 급격한 국부의 상실은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건이다.

일본의 가계와 기업들이 이같은 실물자산을 돈을 빌려 구입했기에 자산가치의 하락은 모든 영역의 재무상황을 악화시켰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가계와 기업들은 소비와 투자를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자금이 생기면 빚을 갚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일본기업들은 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이윤 극대화에서 부채 최소화로 변경시켜야만 했다.

문제는 모든 가계와 기업들이 동시에 이같이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게 되면 자산가치가 더욱 떨어지고 이는 더욱 더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는 모두 옳은 선택을 한 것이지만 집단 전체로 볼 때는 전체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구성의 오류'가 바로 이러한 악순환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안 그동안 일본 경제의 원동력이 되어준 투자능력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90년 GDP의 10%에 이르렀던 자금을 투자하던 기업들이 지금은 부채상환을 하느라 GDP의 4%에 육박하는 자금을 은행에 갚는 입장이 돼버린 것이다. 투자흐름 면에서 이는 지난 10년간 GDP의 14%에 이르는 변화에 해당하는 셈이다.

GDP의 14%에 해당하는 민간 투자자금 수요의 변화도 일본 경제가 감당하기에 벅찬데, 이 기간 동안 저축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가계 부문은 전과 다름없이 GDP의 10% 가까운 저축률을 유지한 것이다.
그 결과로 거대한 유동성 함정이 생겼다. 일본 경제불황은 바로 이같은 '유동성 함정에 빠진 불황'이라고 규정지을 만한데, 이것이 바로 일본경제를 역사상 전례없는 대불황의 늪에 빠뜨린 주범이다.

***금리인하정책의 함정**

일본의 경제불황은 이전의 불황 때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첫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봤자 민간부문에서의 자금 대출과 지출에 대한 수요가 늘지 않기 때문이다. 금리를 0%로 하더라도 민간부문의 자금 수요는 요지부동이다.

일각에서는 통화량을 늘려서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93년경 불경기가 닥쳤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투자 및 소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 어느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97년 이후 투자 및 소비 수요보다 공급이 초과하는 것으로 수치가 나왔는데, 이는 불황의 원인이 아니라 불황의 전조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 이후 유동성 함정과 이에 따른 디플레이션으로 기업과 민간 부문에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고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해 빚을 갚는데 열중하게 된 것이다.

금융기관들도 유동성 함정이 광범위하게 퍼지자 자금을 대출해줄 대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에게 대출의 조건을 유리하게 해주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금융기관의 책임자나 주주들이 신용이 의심되는 대상에게 마구 대출해 주도록 허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도 속수무책이다. 중앙은행이 통화팽창적인 정책을 표방하더라도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일본인들은 도쿄 중심에 위치한 황궁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의 가격에 맞먹는 시대가 지나고 80년대 후반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미국의 대공황 때 통화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 '유동성 함정'이라는 것을 발표했었다. 바로 케인즈가 말한 대공황 불황의 원인이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경제불황에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케인즈의 혁명적 이론은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지 못했기에 통화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왔지만, 일본인들은 90년대에 들어 재무구조적 문제가 유동성 함정과 디플레이션을 가져온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가져올 파국**

일본경제불황이 일반적 불황이 아니라는 또다른 측면은 재무구조적인 문제로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경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경우에는 가령 어떤 일본 사람이 1천엔의 소득이 있을 경우 그중 8백엔을 지출하고 2백엔은 은행에 예금했다면, 8백엔은 누군가의 소득이 될 것이고 2백엔은 은행을 통해 누군가에게 대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의 1천엔이라는 소득에 해당하는 지출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앞으로 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은행이 2백엔을 대출해 줄 곳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은행은 대출을 유도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는 도리밖에 없다. 이것이 전국적인 문제가 되면 중앙은행 역시 금리를 내릴 것이다. 이 경우 금리를 내리면 대출이 늘어나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불황에서는 은행이 보유한 자금 2백엔 중 1백엔만 대출되고 1백엔은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되면 처음의 소득 중 90%만 순환을 해서 다음의 소득이 8백10엔, 7백30엔 식으로 감소해가게 된다.

이렇에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 소득이 1천엔에서 가령 5백엔으로 떨어지면 1천엔의 소득 수준에서 살던 사람은 지금까지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위해 한푼도 남기지 않고 다 쓸 것이다. 그러나 5백엔을 다 써버린 다음에는 재투자할 자금이 없어진다. 이제 5백엔에서 새로운 균형점이 찾아진 것이다. 미국 대공황 때 바로 이같은 일이 발생해 미국 GDP의 50% 가까이가 이런 악순환 구조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재정지출을 늘려 일본 경제가 이같은 악순환에 빠지는 것을 막아왔다. 위에서 예를 든대로 은행에서 대출하지 못한 1백엔의 갭이 생길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국채를 발행해 은행 자금을 끌여들여 대신 지출을 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일본 경제는 막대한 국부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0% 성장을 유지해 왔는데 유동성 함정에 빠진 일본경제를 이나마 유지해온 것만해도 사실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자산들이 대체로 최고가를 기록한 시점에 비해 거의 10분의 1 가량으로 폭략한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킨 것은 비효율적이었다는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일본 경제의 붕괴를 막아온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재정지출을 두고 논란을 빚는 것은 유동성 함정에 빠진 불황이라는 것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 같은 성질을 지녀 현재 시점에서 과연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일본의 GDP 2년치에 해당하는 국부의 손실은 2천만대의 자동차와 주택 3천만채를 생산한 액수에 해당한다. 고베 대지진때 10만채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이것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는 것이어서 어떻게 이 재앙에 대처할 것인지 쉽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재무구조적인 불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재앙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일부에서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일본경제가 0%의 경제성장을 유지한 것도 마치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고도 이루어진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만일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일본 경제는 20~30%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을 것이다.

***1997~98년의 재앙적 경험**

97~98년 하시모토 총리가 재정지출이 별 소용이 없다는 연구결과를 믿고 지출을 삭감해 재정적자를 줄이기로 결정한 결과 경제가 붕괴직전까지 갔었던 것을 보라. 재정적자를 줄인다며 지출을 삭감하는 정책으로 선회하자마자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경제는 세계 2차대전 이후 주요선진국 중에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이했다. 다행히 이같은 대실책을 깨닫고 일본정부는 다시 재정지출을 늘려 일본 경제는 이후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다.

하시모토 당시 총리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지난 37년에 저질렀던 실책을 반복한 것이다. 뉴 딜 정책으로 5년간 재정지출을 확대한 결과 대공황에서부터 벗어나며 경제전망이 좋아지자 재정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해 재정정책을 바꾸었다. 그 결과 미국경제는 즉각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반토막나고 반년동안의 산업생산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루스벨트는 즉각 정책을 바꾸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행히 미국은 진주만 폭격을 받아 재정지출을 늘릴 기회를 잡아 미국 경제는 37년의 불경기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98년의 불경기 때보다는 확실히 상황이 나아졌지만 97~98년의 불황 때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96년의 회계연도 평균치에 미달하고 있다. 게다가 불황으로 세수가 급격히 감소해 재정적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97~98년의 경험으로 일본 사람들 대부분은 물론 종전에는 일본이 비효율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비난하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도 이제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상당 기간 일본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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