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모양토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토기는 평면 반원형의 벽체를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에는 네모꼴의 출입구가 설치돼 있다.
출입구는 여닫이문이 열려 있는 형태이며 출입구 아래에는 받침대가 놓여 있고 벽체의 한쪽 면에는 원형의 봉창(환기창)을 설치했다.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삼국 시대 집모양토기 대부분은 고상식(高床式, 기둥 위에 집을 만듦)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반면, 이번에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벽체를 가진 지면식(地面式) 구조이며, 지붕모양도 앞부분은 삿갓(∧)형, 뒷부분은 원형인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삼한의 가옥을 ‘......거처는 초가집과 흙방으로 짓는데, 모양이 무덤과 같으며, 그 문이 위에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해 봉황동 유적의 소성(燒成)유구(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시설) 주변에서는 철로 만든 말발걸이가 출토됐다.
이 유물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CR(Computed Radiography) 장비로 촬영한 결과 말발걸이 고리부분(輪部)에서 접합부가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삼국 시대 말발걸이는 발을 거는 고리부분에 접합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출토된 말발걸이는 고리를 둥근 형태로 연결하고 연결부분에 각각 구멍을 뚫어 철심을 박는 ‘리벳(rivet)접합’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말발걸이 제작방식으로, 마구 제작기술과 제작방식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편, 박공(牔栱)은 맞배지붕의 측면에 삿갓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이며, 맞배지붕은 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고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책을 엎어놓은 형태)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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