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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로 돈 몰려

나스닥 붕괴하자 헤지펀드로 이동, 금융불안 가중

9.11테러직후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치던 지난 14일 일이다.
뉴욕에 소재한 헤지펀드인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줄리안 로버트슨 회장이 투자가들에게 사과편지를 보냈다. 타이거 매니지먼트는 97년 외환위기직후 한국에도 진출해 SK텔레콤 주식을 저가에 대거매집, 수천억원대 차익을 거둔 헤지펀드로 국내에 잘알려져 있기도 하다.

편지의 요지인즉 타이거가 지난해 4월이후 미국항공사 U.S.에어웨이스의 전체주식중 20%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며 피해 최소화를 위해 이들 주식을 주식시장이 열리면 즉각 매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17일 테러발발후 처음으로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주식을 내다팔았고 그결과 주가는 하루사이에 40%나 폭락했다.

월가에 로버트슨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9.11테러로 엿새간 증시가 휴장하는 사이에 월가의 큰 손들 사이에는 투매자제를 약속하는 '신사협정'이 체결됐다. 그런데 헤지펀드의 큰손인 로버트슨이 이 약속을 위반하니 그럴만했다. 로버트슨은 "9.11테러 이전에 이미 매각할 계획이었다"는 요지의 속보이는 해명성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최종결과는 로버트슨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후에도 항공사 주가는 계속 하락해 테러전에 비해 70%나 급락한 탓이다.

***헤지펀드의 준동,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

9.11사태 발발후 백악관의 즉시개장 요구에도 불구하고 월가는 엿새나 뉴욕증시를 닫았다. 외형상 이유는 시스템의 복원. 그러나 실제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개장시 예상되는 공황적 금융불안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월가 큰 손들은 이에 투매를 안하겠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문제는 '위기가 기회'인 헤지펀드였다. 헤지펀드들은 이미 7월중순부터 달러화에 대한 공격을 개시, 달러화 하락을 초래한 주범이었다. 이런 헤지펀드들이 과연 9.11테러로 아노미적(무정부적) 혼란상태로 빠져든 금융시장을 가만히 보고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에 큰손들은 헤지펀드에 대해 신사협정을 요구, 상당수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애당초 믿을 수 없는 약속이었다. 타이거 매니지먼트가 가장 먼저 약속을 깼고, 상당수 신흥펀드들도 잘러화 등에 대해 공세를 폈다. 상당수 헤지펀드는 미국내 자산을 팔고 자금을 스위스로 옮겼다. 스위스는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하는 지구상 최고의 우량국가이자, 예금자보호법으로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 등의 블랙머니들까지 끝까지 지켜주는 지구상 최고의 안전지대였던 탓이다. 그결과 스위스 프랑화는 9.11사태후 전세계 화폐 가운데 달러화 대비 가장 높은 평가절상률(통화 강세)을 기록하기도 했다.

***'약한 고리' 헤지펀드의 재준동**

9.11사태로 미국경제가 급락하자 세계금융계가 가장 주목한 '약한 고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와 미국의 헤지펀드, 두 곳이었다.
아무리 미국등 선진국 금융시장을 잘 조절해도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97년 외환위기때 우리나라가 종합금융사(종금사)들부터 도산하면서 끝내는 국가차원의 파산상태로 들어간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발발후 한동안 헤지펀드는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었다. 아시아와 러시아에 투자했던 조지 소로스 회장의 퀀텀펀드 등 주요펀드들이 워낙 큰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빛을 잃자 이들 펀드에 돈을 맡겼던 투자가들은 당시 폭등을 거듭하던 나스닥 등 주식 및 벤처투자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투자가들이 등을 돌리자 세계최대 헤지펀드인 퀀텀펀드의 소로스회장은 "더 이상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안전한 투자만 하겠다"고 선언했고, 퀀텀펀드 다음으로 큰 타이거펀드는 지난해 3월 아예 주요펀드 자체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줄리안 로버트슨 회장이 이끌던 타이거펀드는 98년 8월 2백20억달러에 달하던 자산규모가 잇딴 투자실패로 지난해 3월에는 6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후반부터 국제투기성 자금이 벤처캐피탈에서 이탈, 헤지펀드로 다시 몰리기 시작했다.
미국 회계법인이자 컨설팅기관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자회사 PWC 머니트리가 영국 로이터통신의 자회사 벤처원과 공동조사해 지난달 1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4분기 미국 벤처캐피탈의 투자는 전년동기의 240억달러보다 66%나 감소한 80억달러에 그쳤다. 이는 1.4분기의 1백6억달러보다도 21% 감소한 수치이기도 하다.벤처캐피탈업계에서는 하반기에는 벤처투자 기피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올해 총투자액이 지난해 8백90억달러의 3분의 1 수준인 3백억달러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벤처캐피탈의 고전과는 대조적으로 헤지펀드들은 나스닥이 폭락한 지난 하반기부터 계속되는 꾸준한 자금유입으로 98년이래 최대호황을 누리고 있다.영국의 헤지펀드 전문조사기관 타스(TASS) 리서치의 지난달 6일 조사결과에 따르면, 2.4분기에 헤지펀드에는 84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돼 이 기관이 조사를 시작한 94년이래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같은 2.4분기 순유입액은 지난해 전체 순유입액 80억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2000년 헤지펀드, 최고의 성적 기록**

헤지펀드로의 자금 유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했다.
헤지펀드로 이처럼 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퀀텀펀드등 대다수 헤지펀드들이 나스닥등 주식시장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파생금융상품등을 잘 운용해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올린 결과다.

전세계 주요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발표하는 CSFB 트레몬트사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지난 99년까지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투기성자금이 몰린 나스닥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에는 나스닥이 -39.58%, S&P500지수가 -8.18%, 다우존스지수가 -3.29%의 손실을 기록한 반면 헤지펀드는 5.25%의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증시가 폭락, 예외없이 거의 모든 투자가들이 손실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익률이었다. 올해 들어 투기성자본들이 헤지펀드로 몰려드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다.
이처럼 수익률이 높아지자 최근에는 개인투자가들외에 전세계적인 저금리추세로 역마진 위기에 몰린 세계2위의 보험사 AXA 등 세계유수의 보험 및 투자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헤지펀드에 돈을 맡기고 있다.

***헤지펀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국제금융계는 최근의 헤지펀드로의 자금이동 현상을 불안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헤지펀드는 주가,금리, 환율 등을 선물,옵션,스왑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엮은 파생금융상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의 90%가 환율연계상품일 정도로 환율과 파생금융상품은 동전 앞뒷면의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난 95년이래 신경제 신드럼에 편승한 달러화의 초강세로 국제환율시장이 안정돼 있었다. 헤지펀드가 지난 몇 년간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에 있었던 것도 환율시장의 안정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최근 9.11사태를 결정적 계기로 미국경제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달러화가 고평가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환율시장은 심각한 불안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헤지펀드로 돈이 몰린다는 것은 최악의 경우 지난 92년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영국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무릎을 꿇은 파운드화 사태같은 ‘달러화 사태’가 재연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국제금융계의 우려이다.

타스 리서치가 조사대상으로 삼은 2천4백40개 헤지펀드 전체의 자산규모는 4천억~4천5백억달러에 달하며, 조사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2천5백여개의 헤지펀드들까지 합하면 7천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이들 헤지펀드들을 포함한 투기성자금의 준동으로 2000년말 하루 자금거래액이 최고 3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몇배나 많은 금액으로, 헤지펀드의 준동시 세계금융시장은 극도의 혼란상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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