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현재의 불안한 평화를 벗어나 영구적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민주사회 정책 연구원은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한국전쟁 : 정전체제에서 지역 평화체제로'를 주제로 국제 포럼을 가졌다.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브루스 커밍스 교수, 중국 칭화대학교 왕후이(汪暉)교수, 일본 도쿄대학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 성공회대학교 조희연 교수 등 한국 전쟁 관련 국가들의 석학이 참석해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지혜를 모았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정전협정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며 지난 60년간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 노출된 것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미국이 '평화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왕후이 교수는 한국 전쟁의 성격에 대한 열린 논의를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정전체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교수는 남한, 북한, 중국이 한국 전쟁을 모두 다른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면서 여기에 숨어있는 각자의 관점을 서로가 인정하고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정전협정 체결 직후에 열린 제네바 정치회의를 통해 정전협정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무산됐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기약 없는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북·미, 북·일 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과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했다. 이날 포럼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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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후이 : 한국 전쟁, 성격에 대한 열린 논의로부터 시작해야
▲ 왕후이 칭화대 교수 ⓒ민교협 |
왕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쟁의 명칭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으로 불리고 있고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미국이 한국을 돕고자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도 있다"며 "다른 명칭 속에 숨어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다른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의 성격에 대한 보다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 전쟁은 '항미원조'와 '보가위국(집안을 지키는 동시에 나라를 보위함)'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한국 전쟁 참전 당시 중국의 참전은 "중국에, 조선에, 동방에, 세계에 모두 극히 이롭다"고 주장했다. 왕 교수는 이에 대해 "여기서 '동방'은 동과 서, 두 가지 전선 중에 동방을 가리키고 '세계'는 제국주의 억압에서 해방된 전 세계의 피억압 민족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왕 교수는 중국의 지원군이 조선에 들어간 의미는 다중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에 대한 지지,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보호, 미국이 대만 해협을 봉쇄한 것에 대한 반격, 연합국이 중국 공산당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한 항의, 패권적 세계 국면에 대한 반대 등의 의미가 내포된 것"이라며 "마오쩌둥은 1950년 중앙인민정부회의에서 '전 세계 인민은 단결하여 미 제국주의를 쳐서 물리치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왕 교수는 60년 전 중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을 때와 현재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60년 동안 정전체제가 여전히 계속되고"있지만 "패권과 압박의 구조가 여전하고 이를 개혁할 수 있는 능동적 힘은 발견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그는 "평화가 가장 근본적인 접근법"이라면서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와다 하루키 : 북·미, 북·일 수교로 정전체제 종식시켜야
▲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이 회의에서 남한 대표는 북한에서만 자유선거를 실시해 북한을 남한에 통합하는 '한국통일안'을 제안했다. 이에 북한은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자유선거를 통해 국회를 개설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제안하며 모든 외국 군대를 6개월 이내에 철수시킬 것, 선거에 대한 유엔의 개입을 거부할 것을 주장했다. 하루키 교수는 당시 "이 제안을 중국과 소련이 지지했다"며 "회의에 참가한 유엔측 참전국들도 한국 전체의 선거를 지지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 남한 정부는 5월 22일에 유엔 감시하에서 자유선거를 남북한에서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러나 남한의 헌법은 통일의회에서 수정될 때까지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고, 중국군의 철수는 선거 한 달 전에 진행되어야 하며 유엔군 철수는 선거 이전에 시작되어 유엔에 의해 한국 전체가 통제된 뒤에 완료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루키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 중국, 소련이 모두 거부했고 결국 6월 15일 유엔은 16개국 성명을 발표해 토론이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 문제에 대한 평화회의는 끝이 났고 정전협정체제는 기약 없이 진행형으로 남게 됐다. 하루키 교수는 "1958년 중국군이 최종 철수한 뒤에는 미군 철수와 통일 문제를 논의할 회의를 미국과 남한이 진지하게 바랄 리가 없었다"며 "한편으로 북한은 정전협정에 남한 측 관계자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미 간 담판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 논의는 진전되지 못한 채 긴장만 계속됐다"고 진단했다.
하루키 교수는 국제화된 한국 전쟁을 실질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북·미, 북·일 간 국교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과 중국 정부가 미국과 일본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해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으로 그는 6자회담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하루키 교수는 "6자회담이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틀이자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동북아 공동의 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6자회담을 확대시켜서 동아시아가 공동의 번영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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