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는 올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정부와 협력해 이 지역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을 가져다주지 못하면, 이슬람 극단주의는 더욱 과격해져 국제 사회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어두운 전망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CIA 테러'와 '카르자이 2기 내각 구성 실패'라는 불안한 풍경이 연출됐다.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코스트주 채프먼 전초기지(FOB)에서는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7명이 숨지는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고 미 정보 당국 내에서는 '보복 공격'을 천명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선거부정 시비와 정통성 논란을 겪으며 취임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연초부터 '절름발이'가 됐다. 2일 카르자이가 선택한 24명의 각료 후보 가운데 17명이 의회로부터 퇴짜를 맞은 것이다. 카르자이는 앞으로도 새 각료 인선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동쪽에 있는 파키스탄은 피로 물든 연말연시를 보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달 28일 최대 도시 카라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43명이 사망했다. 이어 새해 첫 날에는 북서변경주(NWFP)에서 테러가 일어나 1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아프팍'(AfPak)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이 당대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곳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BBC>의 객원 칼럼니스트인 라시드는 아프팍 지역의 이같은 상황을 진단하며 "2010년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나라에게 냉전 종식 이래로 가장 힘겨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아프팍'을 힘겹게 하고 있고, 왜 올해가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인지를 설명한 그의 칼럼을 전문 번역해 싣는다.
▲ 28일 테러가 발생한 파키스탄 최대 도시 카라치의 혼란스런 장면 ⓒ로이터=뉴시스 |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2010년은 '결정적'이다"
올 한 해, 남아시아 지역 주민들은 질식해버릴지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두 나라가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전쟁 등 일련의 문제들을 풀지 못하면 극단주의는 팽창할 것이다. 파키스탄 핵무기의 안전에 대한 의심은 커질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미국의 위상과 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닥친 도전 과제는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매우 어렵다.
우선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가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물리치기 위해 서방의 동맹국들과 협력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것은 달리 말해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새로운 전략이 성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정치·경제적 제도를 안정시키고 2011년 7월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치안을 아프간 정부군에 이양하겠다고 공언했다.
위태로운 카르자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서방 국가들이 두 나라에서 유용한 정부 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망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엄청난 부정선거 시비 끝에 당선됐다. 그 논란은 카르자이의 국내외적 신뢰도를 갉아 먹었다. 아프간 정부군이 치안 책임을 맡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올해에는 총선을 실시할지에 관해 또 한 번의 논쟁이 있을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의 병력은 여전히 부족한 데다 훈련도 잘 되어 있지 않고, 강력한 무기나 공군력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또한 군인들의 문맹률은 80%에 달하고 있고, 탈레반 점령하에 있는 남부와 동부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파슈툰족 출신의 자원 입대 부족 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레반과 서방 세력 간의 싸움에 있어서 2010년에 또 중요한 일은, 아프간 주민들을 위한 경제 개발과 일자리 제공뿐만 아니라 아프간 정부가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제반 구조를 정착시키는 과제들이다. 이는 이제까지의 작업들보다 훨씬 중요하고 그만큼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 여름 탈레반은 3만 명이 증강된 남부와 동부의 미군과는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것이다. 대신 탈레반은 이미 국내적인 반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토 소속 유럽군들에 노림수를 두고 북부와 서부 쪽에서 탈레반 기지를 확장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은 중앙아시아에서 거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한편,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에 '탈레반의 불'을 지름으로써 증파되어 오는 미군들에 대항하려고 할 것이다.
파키스탄의 위기
한편 파키스탄 군부는 인도와 아프간 정책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아프간 탈레반이 파키스탄 내에 만들어 둔 은신처들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하려면 파키스탄이 알카에다 은신처를 제거하거나 아프간 탈레반의 지도부가 아프간 정부와 대화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파키스탄은 3중의 위기에 처해있다.
첫 번째 위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아시프 알 자르다리 대통령은 곧 강제로 사임당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장기적인 정치 불안을 야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은 경제 위기다. 이는 엄청난 숫자의 청년 실업자들을 이슬람 극단주의의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부군이 파키스탄 자체의 탈레반 문제를 다루는 데 성공률(이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군과 정치 세력들이 상호 이해하고 서로 협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하며, 서방 세력이 아프간 내에서 하는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미군이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시작하자마자 잠재적인 힘의 공백이 생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군이 아프간 탈레반에게 방어적이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상 그런 협력은 일어나기 힘들다.
인도, 이란,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스탄' 국가들-옮긴이) 등 주변 국가들도 그 같은 계산 속에서 아프간 탈레반에 맞설 수 있는 자기네 편 세력을 후원하려 할 것이다. 이는 1990년대에 있었던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 잔혹한 내전으로 귀결될 수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 내 탈레반과의 싸움에서는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군이 아프간 탈레반 혹은 펀자브주(州)를 중심으로 한 극단주의 단체들(파키스탄 탈레반과 연합중)에 맞서 군사적·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이런 노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아프팍
또한 파키스탄 정부는 인도 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나라는 2008년 뭄바이 테러 이후 중단된 대화를 재개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인도 정부는 펀자브 출신 극단주의 단체가 뭄바이에서 벌인 테러와 같은 공격을 다시 감행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도는 파키스탄 정부가 1990년대에 인도령 카시미르에서 벌어진 싸움에 가담한 모든 파키스탄 극단주의자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인도가 대화를 재개하기 전에는 그런 요구들을 들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이견을 조정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새해에도 계속된다면, 파키스탄은 아프간과 관련해 협력하자는 미국의 압력을 무시할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이 매년 15억 달러씩 5년간 원조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에서는 오히려 반미 경향이 짙어지는 실정이다.
파키스탄의 치안 상태는 불안하고, 미국과 인도에 대한 대중의 정서는 들끓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군부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원조가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경제적 투자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제대로 알기란 힘든 일이다.
오바마의 증파 계획이 발표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막대한 양의 자본이 나라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는 아프간-파키스탄 지역과 연계된 (테러) 용의자들이 체포되고 있다. 이는 아프간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파키스탄의 정치와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돕지 못한다면 전세계가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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