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돼지들을 막대기로 툭툭 치며 축사에서 밖으로 내몰았다. 거대한 포클레인이 구덩이 앞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돼지들을 밀쳐 넣었다. 산 채로 구덩이에 빠진 돼지들은 서로 뒤엉켜 몸부림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바람 소리인가 싶었던 그 소리는 돼지들의 비명 소리였다.(...) 구덩이, 내 인생은 그 구덩이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
"급하게 아무거나 먹고 배를 채우기 바빴던 나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물론, 생명에 대한 윤리문제,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서식지인 이 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먹는 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과 연결된, 대단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일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질문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위기에 처한 이 별에서 다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한 그릇의 밥에, 한 끼니의 밥상에 담겨 있었다."
황 감독은 강원도 평창의 농장에 있는 한국 돼지의 0.1%에 속하는 엄마 돼지 십순이와 아기 돼지 돈수를 만나게 되고, 생명이자 동물로서 돼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돈가스 마니아'였던 황 감독과 아들 도영이는 채식을 고민하게 됐다.
"돼지들 곁에서 촬영을 하면 할수록, 돼지와 인간의 차이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이 보였다. 젖을 먹을 때 돈수 입 주위에는 엄마 젖이 하얗게 묻었다.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한껏 늘어져 자고, 누워 있는 엄마의 배를 타고 올라가 쭉 미끄러지고, 아장아장 걷기 연습을 하고, 자면서 꿈을 꾸는지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내 아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돼지를 돼지답게 키우던 농장들은 정부가 대규모 공장식 축산에만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불과 30-40년 만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런 정부 정책으로 인해 위협에 처하게 된 것은 돼지들의 삶만이 아니다. 밀집 사육이 본격화되면서 공장 동물들에게는 제초제와 농약으로 범벅이 된 유전자 변형 사료가 제공됐고, 협소하면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되다 보니 각종 질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어 항생제, 강심제 등 각종 약들이 투여된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를 인간들이 먹게 된다. 또 축산업을 통해 발생한 환경 오염 역시 인간들의 삶의 질을 위협한다. 고기, 달걀, 낙농제품을 만드는 산업이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능가하며, 가축의 트림, 배설물 등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3배, 가축 배설물에서 나오는 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더 강력하게 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물론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TV와 유튜브에 넘쳐나는 '먹방'을 즐겨보면서 육식 위주의 식사에 익숙해진 한국의 식문화가 정말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충실한 것인지 질문해볼 필요는 있다. 학교, 병원, 군대 등 단체 급식에서 소수의 채식인들은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연관된 개인의 취향은 배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처럼 모든 사람이 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육식주의'가 지배적인 관념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생명'과 '동물'과 '고기', 그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린 '자본주의'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먹을 권리' 뿐 아니라 '알 권리'를 강조한다. 육식 권하는 이 시스템이 정말 공장식 축산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와 생명 사이에 끊어졌던 연결이 회복되면서, 나는 수십년간 나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던 매트릭스로부터 빠져나왔다.(...)나는 삶의 스위치를 바꿨다. 단절에서 연결로, 차별에서 공감으로."
이 책은 황 감독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년)의 확장판이다. 책에는 영화에 다 담지 못했던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저자의 고민과 이론적 배경, 사회적 논쟁 등이 충실히 담겨 있다. 자신과 가족,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존과 건강에 대해 한발 더 나아간 고민을 하고 싶은 이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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