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드라마 덕후가 된 내가 요즘 꽂힌 드라마가 있다. <SKY캐슬>이다. <SKY캐슬>은 플롯도 흥미롭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다. 물론 그 중의 압권은 한수진역을 맡은 염정아다. 한미한 집안에서 의사 명문가의 며느리가 된 후 딸을 서울의대에 보내려고 온힘을 기울이는 염정아의 연기는 감탄이 절로 나올만큼 압도적이다. 염정아가 연기한 한수진을 통해 나는 욕망 이면에 심리적 허기와 쓸쓸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 <SKY캐슬>(제목부터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은유처럼 보인다)은 대한민국 상류층이 입시를 통해 부와 지위를 세습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입시에 모두가 목을 매는 이유는 입시성적이 학벌과 직결되고 학벌이 직업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직업과 직장에 따라 개인과 그 개인의 자식들의 운명이 결정됨은 물론이다.
예컨대 서울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면 일년에 엄청난 연봉을 받고 온갖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결혼을 잘 할 확률도 높아지고 직업적 안정성도 보장된다. 반면 입시에 실패해 명문대를 못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뼈 빠지게 일해도 월 200만 원 가량 번다. 사회적 존경, 직업적 안정성, 안온한 삶은 고사하고 결혼조차 난망이다. 설사 혼인에 성공한다해도 머니게임이 된지 오래인 입시전쟁에서 자식들은 전사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폭력적 입시제도 및 위계적 학벌의 타파 보다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이 직업과 직장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체계(임금, 안정성, 사회적 존경 등등)의 혁명적 개혁이라는 점이다. 직업과 직장에 연계된 보상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입시제도의 전쟁화', '학벌위계의 신분화'를 피할 길이 전혀 없다. 그리고 직업과 직장에 연계된 보상체계의 혁명적 개혁 없이는 '출생에서의 운→입시전쟁의 승자→학벌피라미드의 상위포식자→직업과 직장을 통한 사회적 자원의 독식→입시제도를 통한 부와 사회적 지위의 세습 기도'라는 '갑'들의 욕망 사이클 및 '출생에서의 불운→입시전쟁의 패자→학벌피라미드의 노예→직업과 직장을 통한 사회적 자원에서의 배제→입시제도를 통한 신분의 전락'이라는 '을'들의 절망 사이클을 끊어낼 길이 없다.
보상체계의 혁명적 변화는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도 긴절하다. 입시제도의 승자들인 명문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공무원과 교사, 공공부문 종사자, 교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금융기관 종사자 등이 누리는 보상의 크기는 이들이 생산하는 가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크다. 이들이 과도하게 누리는 보상에서 많은 부분을 사회적으로 환수(사회적 환수의 방법은 과세 강화 및 연금 등 특권 축소, 의사 및 법조인 등의 증원 등이 될 것이다)해야 불공정이 시정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창업 등이 활성화 돼 한국경제에 활로가 생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직업과 직장에 연계된 보상체계를 혁명적으로 개혁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SKY캐슬>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행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한사코 위만 보며 욕망에 모든 걸 거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매일매일을 전쟁같은 노동과 영업을 하며 연명을 하는 시민들에게 <SKY캐슬>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염려하는 건 또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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