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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밀정의 총탄에도 의연했던 백범 김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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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밀정의 총탄에도 의연했던 백범 김구 선생

부산시립박물관에 기증된 사진 1점서 가슴 한가운데 선명한 자국 발견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지난 1938년 당시 일제 밀정이 쏜 총탄에 가슴을 맞은 뒤 치료를 받고 의연하게 병상에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부산시립박물관은 서영해(徐嶺海·1902∼1949 실종) 선생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김구 선생의 사진을 발견했다고 14일 밝혔다.


▲ 백범 김구 선생의 가슴 한가운데 총탄의 자국이 남아 있는 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서영해 선생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로 지난 1929년 파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프랑스 통신원으로 활약하면서 유럽 각국에 일제의 강탈과 만행을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의 유품은 총 200여 점으로 부인 황순조 전 경남여고 교장이 보관하다가 지난 1985년 황순조 교장이 작고하면서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 회장이 보관하다가 최근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오게 됐다.

사진 속 김구 선생은 상의를 풀어헤친 채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 중앙에는 검은색 점이 보이는데 이는 지난 1938년 '남목청사건' 때 일제 밀정의 총탄에 맞은 자국이다.

남목청 사건은 지난 1938년 5월 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장사 조선혁명당 본부에서 한국국민당 김구와 조완구, 조선혁명당 이청천과 현익철·유동열, 한국독립당 조소앙과 홍진 등 3당 대표가 연 통홥회의장에서 조선혁명당원인 이운한이 권총을 난사해 현익철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유동열은 중상, 이청천은 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김구 선생은 조선혁명당원 이운환이 난사한 권총에 크게 다친 상태로 중국 장사 상아병원으로 옮겨졌고 사진은 수술이 끝나고 한 달여 치료 끝에 촬영된 것이다.

<백범일지>에는 "병원에서 의사가 보고 입원 수속도 할 필요가 없다 해 문간방에 두고 내가 총을 맞아 죽었다는 전보를 쳤다. 그러나 4시간이 지나도 살아 있었기 때문에 병실로 옮기고 치료를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김구 선생은 임정 국무회의에서 내무·국방·외교 등 전권을 쥐는 주석으로 선출됐다.

부산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기증 자료를 정리하던 과정에서 이번 사진을 발견하게 됐었다"며 "내년 1월초에 기증처리를 완료하고 공식적으로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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