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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이와 5일 전에도 술 마셨는데..."

[현장] 컨베이어 벨트에 까어 사망한 고(故) 김용균 추모문화제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나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방진마스크에 먼지 낀 안전모를 쓰고 있는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 씨. 피켓을 든 손을 유심히 보면 손톱이 바짝 깎여 있다. 석탄을 만지는 게 일이기에 늘 손톱에 시커먼 석탄 가루가 끼기 마련. 바짝 깎인 손톱은 그의 성격이 어떤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지난 1일, 그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 캠페인에 참여했다. '문재인 대통령, 만납시다' 이 피켓을 들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그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점검을 하는 하청 노동자였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곧바로 이곳 태안화력 하청업체에 취업했다. 지난 9월의 일이다, 1년 계약직이다. 일자리를 찾아 경북 구미에서 충남 태안으로 흘러왔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이 인증사진을 찍은 열흘 뒤인 지난 11일, 석탄 컨베이어 벨트에서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 고 김용균 씨. ⓒ발전비정규연대회의

10일 오후 6시께 출근한 김 씨는 다음 날 오전 7시30분까지 트랜스타워 5층 내부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후 10시, 김 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동료들이 그를 찾아 나섰고, 새벽 3시에야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 씨를 발견했다. 고인이 사망한 지 5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고인을 발견한 셈이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고인을 죽음을 추모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더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고(故)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고 김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비정규직의 철폐를 주장했다.

"고인은 발전소 관리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너무 막막해서 말을 잇지 못하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추모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 법을 제정하든, 대책을 세우든, 그 어떤 행위를 한다 해도, 우리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우리 동료들은 고인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고 김용균 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을 추모해달라고 당부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으나, 여전히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고인의 또다른 동료는 회사가 고인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효율과 이익만을 생각하는 회사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용균이와 5일 전에도 함께 술 마셨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는데. 그런 그가 일한 지 3개월 만에 노동자를 소·돼지처럼 보는 발전소 관리자들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 원통함을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고인의 죽음에는 여러 문제들이 존재한다. 2인1조로 일해야 하는 작업임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만약 2인1조로 일했다면, 고인이 그렇게 허무하게 숨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장장 5시간여 동안 방치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설비업무임에도 이를 외주화해서 비정규직인 김 씨가 담당하도록 했다. 위험의 외주화인 셈이다. 한국서부발전은 작년 11월에도 보일러 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가 협착 사고로 숨졌다. 최근 5년간 발생한 발전소 안전사고 346건 중 97%인 337건이 비정규직에게서 벌어졌다.

이러한 죽음의 수치는 다른 하청 노동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청'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위험을 외주화 하는 구조가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 추모제에 참여한 시민들. ⓒ프레시안(허환주)

▲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고인의 분향소. ⓒ프레시안(허환주)

"이대로 죽어야만 하나 묻고 싶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최영렬 LG유플러스 설치기사는 "일하다 다치면 관리자가 하는 말이 '그래서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 거냐, 내일은 출근할 거냐'이다"라며 "지금의 하청 구조는 실적으로, 지표로 쪼이고 착취하는 구조다. 이 구조에 있는 한, 하청노동자는 죽음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재근 청년전태일 대표는 이번 사고가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 사건은 구의역 사고와 판박이"이라며 "2인1조로만 유지됐어도. 누군가 옆에만 있었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만, 회사는 인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었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사측은 비용문제로 이를 하지 않았다"며 "더구나 사람이 죽었는데, 사고를 감추려 하고 책임을 미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전소는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많은 청년들이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며 "결국, 청년들은 산재의 나라 '대한민국', 그리고 경쟁에 내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의 마지막 장면인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이대로 죽어야만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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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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