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우리 사회 경제 민주화의 시작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것은 헌법 119조 2항이 도입된 1987년도 아니다. 세계적으로는 더 그러하여 이미 100년 전에도 경제 민주화 또는 산업 민주화는 시대적 화두였다. 유럽의 산별노조 등 노동운동은 물론, 미국의 그레인저 운동(남북전쟁 후 곡물 수송 독점에 대항한 농민 연합 운동)이나 그린백 운동(농부 및 소상공인이 벌인 통화 팽창 운동), 여러 노동운동 등을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하는 안티 트러스트 운동이 그러하다.
제헌헌법 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민심의 요구
해방 이후 역사를 회고컨대,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제헌헌법에 이러한 정신이 천명되어 있었으며 민심이 경제 민주화의 요구를 마치 시시포스의 돌처럼 꾸준히 밀어올려왔다. 구체적으로는 1963년 '3분(시멘트·제분·제당) 파동'과 정경유착에 대한 민심의 동요로 재벌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자는 공정거래법 입법 발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불발이었고, 이후 여러 차례의 입법 발의가 있었으나 무산된 바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신 체제의 국회에서 1974년 '물가 안정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이 입법되었고, 군사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된 상태에서 국보위 입법회의에서 1980년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이 입법되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 정권에 의해 경제 민주화 입법이 이루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민심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1986년 공정거래법에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으로 대표되는 재벌 개혁 정책이 도입되었고, 1987년 6·10민주항쟁을 전후로는 헌법 119조 2항이 삽입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 경제 민주화 정책은 시시포스 신화처럼 부침을 반복해왔고, 경제 권력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공룡 재벌은 더욱 비대해져 시장을 억압해왔다.
▲ 5월 7일 국회경제민주화포럼, 참여연대, 민변,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의 공동 주최로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피해 사례 발표회에서 CJ대한통운 여수지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었던 노혜경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해방 이후 적산과 미군정 원조 물자의 배분, 그 후의 차관 배분 과정을 거쳐 개발연대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과 정경유착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경제 권력의 집중은 한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헌법 119조 2항)과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헌법 전문)을 심각하게 저해했으며 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고 양극화와 이른바 '갑을관계'를 심화시켰다.
그렇게 커온 경제 권력은 이제 정치 권력이나 행정 권력보다 더 막강한 권력 집중을 형성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최대의 화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치와 정책의 도움을 받아 시장을 장악한 경제 권력은 경제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조금이나마 실현하려는 국회를 향해, 정치와 정부는 시장에서 그만 손을 떼라고 한다. 규제라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할 것들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었다. 지금 국회에는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계류 중이다. 대부분 정무위원회 소관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기존 순환출자 해소 또는 의결권 제한, 전속고발권 일부 완화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지분 한도 축소 및 금산분리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걸려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배임 등 주요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사면법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 개정안이 회부되어 있다.
계류 중인 법안 내용은, 경제 민주화의 시대적 필요와 민심의 열망을 감안할 때, 여전히 미흡하지만 그나마 원안대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왜곡된 시장의 구조와 행태를 바로잡는 그리하여 효율과 형평을 증진하는 추가적인 노력이 요망되고, 노동 부문과 하도급 부문, 유통 부문과 자영업 부문, 분배 구조와 복지 체계 부문,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 경영에 대한 적극적인 입법과 정책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요망된다.
시시포스 신화와 같았던 과거의 경제 민주화와 개혁 법안을 돌이켜보건대, 법안 심의 과정에서 늘상 나타나는 막강한 저항 세력의 로비와 그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폐해를 경계해야 한다. 계류 이후 폐기와 실체 규정의 완화는 물론 단서 조항과 예외 조항, 정치 일정에 맞춘 유예기간의 설정(후 폐지 또는 완화), 솜방망이 처벌 규정과 복잡한 절차 규정 등이 그러하다.
이제 경제 민주화 입법은 역사의 과제다. 민심의 힘에 의한 시시포스 바윗돌 굴리기는 완성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너져내릴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는가, 아니면 누군가 그랬듯 단계적으로 혹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가? 경제 민주화의 앞날이 시시포스 신화처럼 되지 않고 단계적이든 점진적이든 전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민심의 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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