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연계해 ‘창원 58열전’이라는 가제로 지역내 58개 읍면동의 면면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기획을 연재한다.
그 열 네 번째로 찾아간 곳은 ‘자연과 산업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성산구 성주동’이다.
비록 창원시민 일지라도 면과 동마다 오래 품어온 역사를 모르는 시민이 많다. 58열전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창원시 성산구 성주동을 살펴보자.
▶성주동은 창원이 첫인상이다
오랜 세월 지역의 관문역할을 해온 성산구 성주동은 외지인들에겐 창원의 첫인상이다. 창원터널을 막 빠져나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 역시 성주동의 일상이다.
낮에는 초록의 산들, 아파트단지, 그리고 창원국가산단이 눈에 들어차고, 해가 지면 자연은 일찍 잠들었지만 공장과 아파트는 불빛을 뿜어대며 색다른 광경을 연출해낸다. 한껏 커졌던 동공을 안심시키려 터널 끝을 향해 경쟁하듯 달려온 이들에겐 더 없는 선물같은 풍경이기도 하다.
삼정자동, 불모산동, 천선동, 남산동, 안민동, 성주동 등 6곳의 법정동이 함께하는 성주동은 동쪽은 대암산과 불모산, 남쪽은 장복산과 불모산 줄기 능선에 포근히 감싸져 있고, 불모산에서 발원한 계곡과 하천 등이 있어 예부터 삶터로는 제격인 곳이다. 이 같은 생각은 안민고개에서 성주동을 내려다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안민고개는 진해와 경계를 이루는 장복산 안부에 형성되어 있는 고갯길이다. 봄철 고갯길을 가득매운 벚꽃에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해야경 또한 장관을 이뤄 대표적인 드라이브코스로 사랑받는 곳이다.
반면 성주동 방면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지만 성주동을 바라보기위해 찾는 이들도 제법 된다. 안민동에서 올라오는 길을 따라 고개를 오르는 이들도 눈에 띈다. 어떤 이들은 자전거로 또 다른 이들은 데크 산책로를 따라 고개를 오른다. 창원에서 진해까지 모두 9km에 이르는 고갯길은 정상에서 진해구 태백동방면 4km, 안민동 방면 2.2km에 데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안민령이라고도 불렀던 안민고개는 오래전부터 창원과 진해를 잇는 지름길이자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육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삼한시대 창원에서 생산된 철이 안민고개를 넘어 중국,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예부터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교류하는 교통,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장복터널과 안민터널이 개통되면서 그 역할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주요한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또 이곳을 만날재라고도 하는데, 옛날 진해에서 창원으로 시집간 부녀자들이 명절 사흘째 되는 날 고갯마루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을 만난데서 유래됐다 한다. 이후 전통 민속축제가 된 만날재 행사는 일제에 의해 단절됐다가 지난 2011년부터 재현됐다.
▶그 옛날 성주동은 미륵동이라 불렸다
성주동이 지금의 동명을 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주동은 불모산에 있는 고찰(古刹) 성주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리고 성주동 일원은 과거에 미륵동이라 불렸을 만큼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잊혀있던 흔적들이 발굴되었고, 일부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했지만 여전히 성주사는 세월을 입은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반긴다.
불모산 자락 깊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성주사는 신라 시대인 835년에 창건되었다. 통일 신라 흥덕왕 때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자 왕명을 받은 무염 스님이 신통력으로 이를 물리친 후 국사가 됐고, 무염은 전국 곳곳에 절을 창건하였는데, 불모산에 마련한 절은 성인이 머무는 절이란 뜻으로 성주사(聖住寺)란 이름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주사 경내를 돌다보면 예상보다 큰 규모에 감탄하고 1681년 건조한 대웅전에 또 한 번 환호한다. 어디 이것 뿐이랴. 고려 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 관음보살 입상, 1773년에 세워진 원혜의 부도와 1781년에 세운 경세의 부도 등 원통형석조부도 4기도 있다. 경내를 돌아볼수록 우리 지역에 오랜 역사를 품어온 사찰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은 더해진다.
성주사 옆으로는 불모산에서 발원한 계곡이 흐른다. 계곡은 성주사가 있다고 하여 성주사계곡으로 붙여졌다. 겨울추위가 시작되었는데도 계곡물은 시내를 이루며 경외감을 더한다. 계곡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에 직선에 가깝게 발달되어 있고, 성주사 주위로 넓은 평지를 만들어 고찰(古刹)이 자리할 터를 제공해 줬다.
대암산 자락엔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삼정자동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 암반에 돋을새김되어 있다. 불상은 좌선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안정감과 입체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불상 옆으로는 약수가 흐르고 있고, 아파트단지 뒤편 등산로 입구에서 150m 거리밖에 되지 않아 촛불을 켜고 공양물을 바치는 등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들과는 달리 자리를 옮긴 것도 있다. 용지공원에 있는 불모산동 사지 삼층석탑이 그렇다. 1973년에 불모산동 소재 사지에서 발견되어 석탑 부재만을 옮겨와 1989년에 복원됐다. 석탑의 형태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외에도 성주동 곳곳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등의 절터가 남아있고, 폐탑과 불상들이 화려했던 창원 불교의 전통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근래의 성주동엔 창원국가산단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성주동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요새적 지형에다 넓은 구릉지를 갖추면서 1970년대 창원기계공업기지 조성구역에 포함됐다.
한화, 지엠, 두산 등 유수의 기업과 한국전기연구원 같은 국책 연구기관도 자리 잡았다. 또 최근에는 팔룡동에 이어 창원시 2호 수소충전소도 들어섰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암산을 등지고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큰 규모의 대학병원과 상권도 새로 구축되며 도심 속에 신도시도 형성됐다. 또 성주사 가는 길엔 전에 없던 공장단지도 들어섰고, 교각 공사도 한창이다. 이쯤 되면 성주동이 가진 자연을 침범하고 있다는 생각도 할 법하다.
그러나 세상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한쪽은 미륵동이라 불렸을 만큼 불교관련 흔적에다 창원의 허파역할을 해온 초록이 무성하다. 또 다른 쪽은 불야성을 이루며 도시를 키워나가는데 여념이 없다. 쉬이 녹아들 것 같지 않던 이 둘의 절묘한 조화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주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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