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사실상 연내 서울 답방을 위한 초대장을 보내면서 김 위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진다.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그 자체로 세계에 보내는 평화적인 메시지, 비핵화에 대한 의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를 다 담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려있는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9월 남북 정상이 '평양 선언'에서 밝힌 김 위원장의 답방 약속을 환기시키는 한편,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촉진시키려는 구상을 피력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답방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이끌어낸 점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위한 '멍석깔기' 성격이 강하다.
문 대통령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은 이 합의를 마저 이행하기를 바라고, 김정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자기가 이루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20%가 될지 30%가 될지 어느 정도 단계가 되면 그때의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가 최종 완료되지 않더라도, 북한이 성의 있는 '초기 조치'를 실행할 경우, 일부 '상응 조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2일(현지시간) G20 회의를 마치고 귀환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북미 정상회담 시점을 1~2월로 예상하며 "세 군데의 장소를 검토 중"이라고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미중 정상회담 자리에서도 "핵 없는 한반도를 보기 위해 김 위원장과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고, 중국 외교부도 "중국은 미국과 북한 정상이 다시 회담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미중 정상이 무역전쟁을 석 달 간 휴전키로 합의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함께 힘을 모으기로 뜻을 모은 점도 한반도 문제 진척에 청신호다.
G20에서 만난 한미중 정상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북한 비핵화 협상의 중대 목표라는 점을 공유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모양새가 좋겠다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김 위원장의 답방 전망이 밝지 않았던 이유는 북미 간 실무협상과 고위급 회담의 교착으로 인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 회담이 분명하게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관측은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킨다"는 서울 답방 낙관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는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어질 수 있다"며 "연내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순리대로 한다는 것"이라며 유동적 상황을 인정했으나,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김 위원장의 답방이 선행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대는 일관됐다.
이로써 '톱다운' 방식의 삼각 축 가운데 김 위원장의 결단만 공백으로 남은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내 답방할지는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한 것도 교착의 매듭이 실무선에서 풀기 어려워진 만큼, '톱다운' 방식을 재가동해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자는 제안이자 압박으로 풀이된다.
공은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갔지만, 김 위원장이 이 제안에 선뜻 수긍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김 위원장으로서는 한미 정상이 제안한 시나리오를 외면할 경우, 자신의 비핵화 의지에 관한 국제적 신뢰를 깎아내릴 수 있어 북미 협상 장기 교착의 원인제공자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다.
자신의 서울 답방이 북미 협상을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는 디딤돌이 되고, 북한 체제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 정세에 관한 공세적 비전과 포부를 담아내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간상의 제약은 극복 가능한 문제다.
반면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더라도 북미 협상의 틀 내에 갇힌 남북관계 문제에서 비약적인 진전을 이루기 쉽지 않고, 미국이 '비핵화 완료 뒤 제재 완화'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본질적 문제인 북미 협상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렵다.
북한은 미국이 선(先) 비핵화만 압박하며 상응조치에 미온적인 데다 북미 정상회담 시기도 중간선거 뒤로 연기한 데 이어 또다시 내년으로 미루는 등 6월 '싱가포르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자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지만, 실리가 담보되지 않는 상징성만으로는 자칫 들러리가 되는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이끌어내려면 한미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로 이어질만한 구체적인 당근책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한미 군사 훈련 연기 △스포츠 및 문화 예술 교류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 △철도 연결을 위한 사전 조사 연구 작업 등과 함께 종전선언 가능성도 언급했다.
남북관계 진전을 불가역적 흐름으로 굳히도록 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제안이지만, 북한이 이를 북미 간 본협상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판단할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통해 "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이뤄주겠다"고 밝힌 메시지의 내용이 구체적인지, 물밑 채널을 통해 전달될 그 메시지가 북한의 시간표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등에 따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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