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퇴사한 A씨. 그간 퇴근시간을 훌쩍 넘은 밤 11시까지 일을 한 게 비일비재하다. 주말에는 회사 행사 관련, 현장지원을 나간 적도 많다. 주말임에도 오전 8시부터 밤10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관련 초과수당이나 주말근무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A씨는 퇴사하면서 그간 받지 못한 수당을 달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A씨와 맺은 근로계약이 포괄임금제라 해당 내역은 지급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연히 관련해서 100만 원 정도의 수당을 생각했으나 A씨 손에 쥔 돈은 고작 16만 원에 불과했다.
지난 7월, 디자인에이전시에 입사한 B씨도 마찬가지다. 계약 당시,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30분에 퇴근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했다. 밤 12시는 기본이고 새벽4시를 넘기기도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사장은 포괄임금제라고 명시한 근로계약서에 B씨가 서명했기에 연장수당이나 야근수당이 연봉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B씨가 그렇게 해서 받는 연봉은 2000만 원이었다.
대부분 직장인은 모르는 포괄임금제의 비밀
직장갑질119가 2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B씨는 7월부터 11월(22주)까지 근무하는 동안 단 한 주만 빼고 21주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를 해왔다. 더구나 한 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52시간(법이 허용하는 최대근로시간)을 넘긴 주도 9주나 됐다.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 위반"이라며 "7월 1주부터 11월 5주까지 연장근로시간이 261시간 49분으로, 통상임금 기준으로 떼먹은 임금이 313만1790원"이라고 지적했다. 추후 B씨는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을 해서 체불된 금액을 돌려받았다.
그나마 이렇게 B씨처럼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나, 대부분 직장인들은 이를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다.
직장갑질119에 서 받은 제보 중에서 한 회사는 직원 월급명세서 '월급 200만 원' 안에 △기본급 약 155만 원 △연장수당 약 30만 원 △연차수당 약 5만 원 △식대 10만 원으로 기록한 뒤, 4대 보험료를 공제해 매달 181만 원을 월급으로 줬다.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몇 시간을 하든 제약없이 계약서 금액대로 정액제 월급을 지급하는 셈이다.
전형적인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서인 셈이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 존재하지 않는 임금산정방식이다. 임금은 기본임금에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외수당을 합산해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포괄임금제는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근로계약 시 사용자와 노동자가 정한 일정액의 시간외수당을 매월 지급한다. 주목할 점은 근로계약 시 정한 시간외수당이 노동자가 실제 일한 노동시간보다 적어 노동자가 피해를 볼 경우,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인들은 연장수당, 연차수당을 미리 정해놓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회사의 말을 그대로 믿기 일쑤다. 이러한 계약서에 자신이 사인했으니 도리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직장갑질119 "탄력근로제 확대는 장시간 노동 확대하겠다는 것"
직장갑질119는 "포괄임금제는 대부분 무효"라며 "감시 업무 또는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감시·단속적 근로, 경비원, 청원경찰, 시설관리 대기자, 수행운전기사, 당직대체요원 등)처럼 노동시간 계산이 어려운 경우가 아닌 한 포괄임금제를 무효"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회사와 포괄임금제로 계약을 맺는다 하더라도 정액제로 월급을 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회사가 포괄임금제라며 야근 수당을 안 주거나 야근시간 계산을 하지 않고 매달 정해진 금액을 주는 것도 무효"라며 "이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하루 8시간을 초과해서 연장·야간·휴일근무한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법정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하지만 포괄임금제가 무효라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못된 사장들이 임금을 떼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정부가 진행하는 탄력근로제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현행법에 의하면 3개월 동안은 노동자가 45일은 주당 64시간, 45일은 주당 40시간을 근무할 수 있다"며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탄력근로제처럼 이것이 1년 단위로 확대될 경우 6개월 동안 주당 64시간, 나머지 6개월은 40시간을 일을 시켜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그렇게 될 경우, B씨의 경우 7월~12월은 지금처럼 64시간 근무를 시키고, 내년 상반기는 주 40시간으로 일을 시키면 주52시간 이상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렇게 될 경우, 체불임금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권호현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정부와 여당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정책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장시간 노동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인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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