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 총리 가운데 유일하게 3번 연임을 한 대처는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49년 켄트주 다트퍼드 선거구 보수당 하원 후보로 처음 지명됐지만 두 차례 총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후 재부무, 에너지부, 교육부 장관 등을 두루 거친 뒤 1975년 영국 사상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가 됐다.
11년간의 재임 기간에 신 자유주의를 내세운 과감한 정책과 개혁을 통해 영국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당시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강인한 지도력으로 회생시켰으며 과감한 민영화와 사회복지 지출 삭감을 통해 1980년대 초 치솟던 인플레도 잡았다.
경쟁력이 떨어진 공기업은 과감히 민영화하고 1984년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업자를 양산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영웅으로 떠올랐고, 미국과 협력해 냉전을 붕괴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권 3기인 1990년 유럽통합에 반대하면서 당 지도부의 반발에 부닥쳐 총리직에서 스스로 사퇴했으며 이듬해 5월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2년 여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2002년 뇌졸중을 겪으면서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뇌졸중을 겪은 이후로는 여러 차례 쓰려져 병원 신세를 지면서 영국인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링컨셔 그랜섬 출신의 대처 전 총리는 감리교 목사이자 지자체 의원인 부친의 영향 아래 정치인의 소양을 쌓으며 성장했다.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서 콜체스터의 플라스틱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보수당 지역 조직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1951년 이혼한 사업가 데니스 대처와 결혼해 슬하에 쌍둥이 남매를 뒀다. 두 차례 하원 선거에 낙선하고 야인으로 지낸던 1953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1년에는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이 제작돼 할리우드의 연기파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대처 전 총리 역할을 연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대처 전 총리를 꼽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해 새로운 도약을 이룬 것처럼 대한민국이 앓는 중병을 고쳐놓겠다"며 '한국판 대처리즘'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은 대처 전 총리가 생전에 남긴 주요 발언들이다. ▲ "뭔가 말해야 한다면 남성에게, 뭔가 이뤄져야 한다면 여성에게 요구하라." (1965년 연설) ▲ "내 생전에 여성 총리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1973년 교육장관 시절, 그후 6년 만에 스스로 여성 총리가 됨) ▲ "비전이 없는 사회의 인간은 틀림없이 망한다." (1975년 2월 보수당 대표 수락 연설) ▲ "영국은 '철의 여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1979년 총선 유세 발언) ▲ "이제 내 돈을 돌려받길 원한다." (1980년 더블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 "나는 여론수렴형 정치인이 아닌 확신형 정치인이다." (1979년) ▲ "나는 논쟁도, 토론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냥 앉아서 나에게 동의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직업이 아니다. (1980년) ▲ "숨죽인 채로 그 좋아하는 언론 유행어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유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여러분이 유턴하세요. 나는 않겠습니다." (1980년 보수당 회의에서 경제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 "내 아들 구출에 소요된 비용은 내가 내겠다. 그래야 납세자들에게 (개인적 필요 때문에)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2월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실종된 아들 마크가 6일 만에 구출된 뒤) ▲ "침략은 반드시 응징당하고 도둑이 훔친 물건을 가지고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싸워서 보여줬다." (1982년 7월 포클랜드 전쟁 때) ▲ "알래스카가 침략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그때에는 나도 이를 국제기구에 넘기겠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국제기구를 통한 협상 제안을 맞받으면서) ▲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최고의 신념을 잃고 용기와 반항심을 잃으면 언제라도 전제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 전제정치는 거기에 반대할 매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1984년 7월 탄광 파업 당시) ▲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1987년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 "이제 할머니가 됐다." (1989년 3월 손자 출생 때) ▲ "웅변일랑 남들이 하도록 떠넘기고 나는 행동만을 해나가겠다." (1990년) ▲ "노, 노, 노(No! No! No!)." (1990년 제프리 하우 부총리가 물러나며 총리 직책이 도전받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 "나는 계속 싸웠다. 싸워서 이겼다." (1990년 11월 총리관저에서) ▲ "가정은 더이상 잘할 것이 없을 때 오는 곳이다." (1991년 5월 퇴임 후 6개월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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