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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타살 결론 "머리 맞아 사망한 후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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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타살 결론 "머리 맞아 사망한 후 추락"

이정빈 교수 "아령이나 돌 같은 물체로 가격당한 것 같다"

고(故)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유골 정밀 감식 결과가 26일 나왔다. 지난해 12월 5일 장 선생 묘를 개묘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공동위)의 의뢰에 따라 장 선생의 유골 등을 부검, 감식한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날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장 선생 머리뼈 골절과 엉덩이 뼈 골절이 따로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리고 "머리 가격을 당해 사망한 후에 추락해 엉덩이뼈 골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머리뼈 골절과 관련해 "망치보다는 아령이나 돌과 같은 물체로 가격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는 고인의 유해를 직접 부검한 것에 바탕을 뒀다는 점에서 그간 사진 판독을 통해 내놓았던 추측성 감식 결과와 차원이 다르다. 당초 육안 감식을 했을 때 이 교수는 망치로 얻어맞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실제 뼈를 맞춰본 결과 망치보다는 아령이나 돌과 같은 동그란 물체에 맞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막연히 '가격을 당했다'고 추정한 데서, 유골 부검과 감식 등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아간 것이다. 고인이 타살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말이다.

이날 발표 결과를 종합하면 누군가 고인의 머리를 가격한 후 즉사한 시체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고, 시신이 떨어질 때 엉덩이뼈 부분에 손상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처음 감식할 당시 △시신의 팔 아래 가슴 주변에서 누군가 강하게 껴안은 흔적이 발견됐다는 점 △몸의 다른 곳에 상처가 없었다는 점 △옷이 찢기지 않았다는 점 등까지 감안하면, 지형이 험한 약사봉에서 고인이 추락사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제3의 장소에서 타살된 후, 시신이 약사봉 아래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법의학자인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 조사 공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 감식 국민보고대회'에서 감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적·의학적 방식 동원, 각계 전문가 참여

장준하는 1974년 긴급 조치 위반 혐의로 15년형을 받아 복역하다가 건강상 이유로 출소한 후 이듬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정부는 '실족사'로 결론을 냈지만 타살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검안의였던 조철구 박사가 고인의 시신을 감식한 결과는 1993년 구(舊)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조사위원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타살 의혹은 더욱 거세게 일었다. 2000년 이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인 조사에 나섰지만 결국 '진상 규명 불능'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해 8월 묘소 이장을 위해 개묘한 고인의 시신에서 또렷한 두개골 골절이 발견됐다. 이는 다시 타살 의혹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2월 5일 고인의 유골은 정밀 감식을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이번 감식에는 고인의 사망한 지 38년 만에 이뤄진 부검 결과까지 포함돼 있다. 국가 기관은 참여하지 않았다. 공동위 측은 "국과수 등 국가 기관이 공동위의 참여 요청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민간 차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감식이긴 하지만, 1975년 이후 가장 진전된 방식이 동원됐다.

이 교수 팀은 먼저 고인의 유해가 맞는지, 장준하의 아들 장호권 씨와 유해를 대상으로 친자 감정을 실시해 99.9%의 부자 관계 성립을 확인했다. 이후 이 교수가 주도한 이번 정밀 감식에는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방사능과 등 다방면의 전문가가 동원됐다. 또한 컴퓨터단층촬영(CT촬영) 등을 통한 3D 유골 복원, 두개골 절개 등 종합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유해 분석과 함께 1975년 고인의 시신을 최초 검안했던 조철구 박사가 작성한 검안 기록도 검토했다.

▲장준하 유골 복원 사진 ⓒ프레시안(박세열)

두개골 골절은 "가격"에 의한 것…추락사라는데 출혈도 없어

이 교수 팀이 얻은 결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두개골 뼈의 골절 부분이다. 이 교수는 이것은 맞았을 때 나올 수 있는 손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교수는 "때려서 나오는 손상과 떨어져서 나오는 손상은 완전히 다르다. 두들겨 팼다고 하면 두개골 찌그러짐으로 압박이 일어나서 때린 쪽이 손상을 입는다. 반면 떨어지면 가속에 따라 (떨어진 쪽의) 반대편 뇌가 다친다. 특히 함몰 골절이면 훨씬 더 큰 힘이 발생해 (반대편) 안와(눈 윗부분)가 깨지게 된다. 그런데 장 선생 유골을 보면 깨끗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넘어져서 (골절이) 일어났다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조철구 박사의 자료도 없이 사진만 봤을 때는 (뼈가) 깨져 나간 것 같아서 망치(로 맞았을 가능성)를 얘기했는데, 이번에 검식하면서 뼈를 붙여봤더니 아귀가 맞아 틈이 없었다. 그렇다면 망치가 아니다. 망치면 평평한 면이다. 바닥에 떨어진 것과 똑같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상흔과 골절 부위를 보면 동그란 뭘로 (머리를) 쳤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아령이나 돌과 같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둘째, 이 교수 팀은 두개골 골절과 엉덩이뼈 골절이 동시에 추락해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교수는 "제가 본 소견으로는 두개골 골절, 엉덩이뼈 골절이 동시에 추락해서 생겼다고 볼 수 없다. 각자 달리 일어났어야 하는데 머리뼈는 가격에 의해, 엉덩이뼈는 추락에 의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엉덩이뼈가 부러져서는 절대 금방 죽지 않는다. 그런데 머리를 맞으면 즉사할 수 있다. 즉사하면 혈액순환이고 뭐고 없어진다. 그때 (시신을) 떨어뜨렸다면 출혈이 없다. 조철구 박사 기록을 보면 출혈이 없다고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엉덩이를) 때려서 관골이 떨어질 정도면 자국이 나게 되는데 (시신 사진을 보면) 자국이 없다. 이건 떨어져서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고인이 떨어졌다는 높이와 비슷한 높이에서 떨어진 시신 사진도 공개했다. 이 교수는 "6층 모텔 옥상에서 떨어진 사례인데 엉덩이뼈 오른쪽이 깨졌다. 뼈가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튀어나왔고 출혈 증거가 허리부터 옆구리 전체에 있다. 그런데 장준하 선생의 사진에는 출혈이 없다. 출혈이 없는 게 추락사에서 가장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즉 고인의 경우 머리를 다쳐 즉사한 후 심장 박동이 멈췄고, 이후에 시신이 떨어져서 결국 출혈이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셋째, 이 교수는 추락사가 아니라는 정황으로 머리와 오른쪽 엉덩이에만 골절이 있는 고인의 경우 오른쪽 어깨에 전혀 손상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 교수는 "추락에 의해 (두 군데의 골절이) 생겼다면 14.7미터에서 땅에 닿으면서 어깨가 안 부서질 수가 없다. 엉덩이 관절이 부러질 정도인데 어깨뼈가 안 나갔다. 추락사는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깨뼈나 갈비뼈 등 약한 부위를 다치지 않고 머리뼈와 엉덩이뼈만 골절될 수는 없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공개했다.

▲ 머리로 떨어진 경우 엉덩이를 다칠 수 있지만 어깨를 다치지 않았다. ⓒ프레시안(박세열)
▲ 엉덩이로 떨어진 경우 머리는 다칠 수 있지만 어깨를 다치지 않았다. ⓒ프레시안(박세열)
▲ 가격당했을 경우 가격당한 면에만 손상이 온다. ⓒ프레시안(박세열)
▲ 떨어져 다쳤을 경우 반대편 두개골에 손상이 온다. ⓒ프레시안(박세열)

장남 장호권 씨 "박근혜가 해결해야 할 것"

안경호 국민대책위 조사연구위원장은 "약사봉에서 시신이 발견된 곳은 14.7미터로 각도로 볼 때 등산과 하산이 불가능한 곳"이라며 "가장 확실한 단서인 선생의 시신을 확인했을 때 셔츠와 바지 어디에도 추락해 찢긴 흔적이 없었고, 절벽에서 추락했다면 찰과상이 다발로 나타나야 함에도 가장 약한 갈비뼈와 하악골에도 골절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결국 장준하 선생은 약사봉(의 그) 장소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김용환을 지목하는데, 그는 사건 당시부터 1993년 민주당의 진상 조사 때, 2000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조사위 때까지 수많은 진술 번복을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37년 만에 장준하 선생이 스스로 (타살의) 증거를 보여줬다. 법의학적인 감식을 통해 선생이 돌아가신 지 38년 만에 타살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장 선생의 삶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국가가 실체적 진실에 대해 대답할 차례"라며 "이제 우리는 국민과 함께 장준하 사인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장남 장호권 씨는 "이제 과학적·의학적으로 검시가 끝났고, 타살이라는, (누군가) 죽였다는, 살인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이제 남은 것은 비록 (사건이) 박정희와 연결돼 있긴 하지만, (그의 딸인) 박근혜가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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