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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 <17>

팽나무, 소나무, 넝쿨나무는 서로 싫어했다. 둥치가 아름찬 팽나무와 소나무는 뿌리와 가지로 가로막으며 자리다툼이 잦았고, 그 둘 사이에서 넝쿨나무는 어느 쪽으로든 기어오를 틈을 엿보았다.

강풍이 분 날, 팽나무와 소나무의 가지들이 사방팔방으로 활개를 치다 얽혀 맞부딪혔다. 그 와중에 팽나무의 가지 몇 개가 부러지고 소나무는 껍질이 벗겨졌다.

"너 때문에 내 팔이 부러졌어."

"네가 먼저 날 때렸잖아."

화가 치민 팽나무와 소나무는 상대방을 탓하며 가지들끼리 두들겨댔다. 격한 몸싸움 뒤, 분을 삭이지 못한 두 나무가 넝쿨나무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우리 사이에 울타리를 쳐줄래? 기대어 살게 해줄게."

기대어 살게 해준다면 겨울에 춥지 않게 해줄 거라고 엉겨 붙는 넝쿨나무를 귀찮게 하지 말라며 차갑게 뿌리쳤던 두 나무였다.

"울타리를 치려면 너희 둘 사이를 오가야 해. 힘들고 갈증 나서 못해."

키 오종종한 나무를 감고 있던 넝쿨나무가 반색하지 않고 의외로 쌀랑했다. 넝쿨나무는 두 나무가 홀로 서지 못하고 남한테 붙어사는 족속이라고 업신여기던 것을 잊지 않았다.

"목마르지 않게 해주고 높이 올라가도록 해줄게."

팽나무와 소나무는 넝쿨나무를 붙잡고 얼렀다.

"그토록 애걸하니 해볼게."

넝쿨나무가 못 이긴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넝쿨나무는 팽나무의 허리를 감아 안은 다음, 재빨리 다른 곁가지를 쳐 소나무로 건너갔다.

"쟤 가지가 나한테 넘어오지 않도록 튼튼히 막아줘."

조바심이 난 두 나무는 한참 울타리의 얼개를 짜고 있는 넝쿨나무에게 채근을 했다.

"잠자코 기다려."

넝쿨나무가 쏘아붙이자 두 나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나무를 돌돌 감은 넝쿨나무는 두 나무 사이에 촘촘한 울타리를 엮으며 높은 가지로 기어 올라갔다.

"숨이 막혀. 풀어줘."

팽나무와 소나무가 목이 졸려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넝쿨에 우듬지까지 칭칭 휘감겨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두 나무의 잎이 암갈색으로 바뀌고 밑동은 두터운 이끼에 덮여갔다. 온통 넝쿨에 뒤덮인 두 나무는 머리카락을 산발한 괴기스런 모습으로 기우뚱거렸다.

이듬해 가을, 두 나무가 간발의 차이로 쿵 쓰러졌다. 한 나무꾼이 넝쿨나무를 도끼로 컥컥 쳐내고, 소나무는 땔감으로 쓰고 팽나무의 성한 부분은 도마를 만든다며 톱으로 모조리 토막을 냈다.

ⓒ한정선

나무(木)는 자신을 태워 불(火)을 만들고 불은 재를 만들어 흙(土)을 기름지게 하고 흙은 바위(石)와 금(金)을 만들고 바위와 금속은 물(水)을 걸러 맑게 하고 물은 나무에 수분을 주어 잘 자라게 해줍니다. 이는 오행(五行)에서 말하는 상생(相生)의 원리입니다.

상생은 상대방이 살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일입니다. 상대방이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며 모든 이의 죽음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하면 공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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