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분 날, 팽나무와 소나무의 가지들이 사방팔방으로 활개를 치다 얽혀 맞부딪혔다. 그 와중에 팽나무의 가지 몇 개가 부러지고 소나무는 껍질이 벗겨졌다.
"너 때문에 내 팔이 부러졌어."
"네가 먼저 날 때렸잖아."
화가 치민 팽나무와 소나무는 상대방을 탓하며 가지들끼리 두들겨댔다. 격한 몸싸움 뒤, 분을 삭이지 못한 두 나무가 넝쿨나무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우리 사이에 울타리를 쳐줄래? 기대어 살게 해줄게."
기대어 살게 해준다면 겨울에 춥지 않게 해줄 거라고 엉겨 붙는 넝쿨나무를 귀찮게 하지 말라며 차갑게 뿌리쳤던 두 나무였다.
"울타리를 치려면 너희 둘 사이를 오가야 해. 힘들고 갈증 나서 못해."
키 오종종한 나무를 감고 있던 넝쿨나무가 반색하지 않고 의외로 쌀랑했다. 넝쿨나무는 두 나무가 홀로 서지 못하고 남한테 붙어사는 족속이라고 업신여기던 것을 잊지 않았다.
"목마르지 않게 해주고 높이 올라가도록 해줄게."
팽나무와 소나무는 넝쿨나무를 붙잡고 얼렀다.
"그토록 애걸하니 해볼게."
넝쿨나무가 못 이긴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넝쿨나무는 팽나무의 허리를 감아 안은 다음, 재빨리 다른 곁가지를 쳐 소나무로 건너갔다.
"쟤 가지가 나한테 넘어오지 않도록 튼튼히 막아줘."
조바심이 난 두 나무는 한참 울타리의 얼개를 짜고 있는 넝쿨나무에게 채근을 했다.
"잠자코 기다려."
넝쿨나무가 쏘아붙이자 두 나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 나무를 돌돌 감은 넝쿨나무는 두 나무 사이에 촘촘한 울타리를 엮으며 높은 가지로 기어 올라갔다.
"숨이 막혀. 풀어줘."
팽나무와 소나무가 목이 졸려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넝쿨에 우듬지까지 칭칭 휘감겨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두 나무의 잎이 암갈색으로 바뀌고 밑동은 두터운 이끼에 덮여갔다. 온통 넝쿨에 뒤덮인 두 나무는 머리카락을 산발한 괴기스런 모습으로 기우뚱거렸다.
이듬해 가을, 두 나무가 간발의 차이로 쿵 쓰러졌다. 한 나무꾼이 넝쿨나무를 도끼로 컥컥 쳐내고, 소나무는 땔감으로 쓰고 팽나무의 성한 부분은 도마를 만든다며 톱으로 모조리 토막을 냈다.
ⓒ한정선 |
나무(木)는 자신을 태워 불(火)을 만들고 불은 재를 만들어 흙(土)을 기름지게 하고 흙은 바위(石)와 금(金)을 만들고 바위와 금속은 물(水)을 걸러 맑게 하고 물은 나무에 수분을 주어 잘 자라게 해줍니다. 이는 오행(五行)에서 말하는 상생(相生)의 원리입니다.
상생은 상대방이 살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일입니다. 상대방이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며 모든 이의 죽음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하면 공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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