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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르에 '예술의 혼' 빚는 '미술계의 돈키호테' 박기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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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다양한 장르에 '예술의 혼' 빚는 '미술계의 돈키호테' 박기웅 작가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예술분야에서도 한류스타 나오는 시스템 만들어야"...미술시장도 지방시대 강조

다양한 장르의 미술세계를 펼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박기웅 중견 작가가 환한 모습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박기웅 작가


문화와 예술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예술의 고장’인 전북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소신과 철학을 갖고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찾아 작품 세계와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현대 미술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중견 화가다.

한때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로 강단에 섰으나, 장르 구분 없이 보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제2의 예술가로서의 삶에 도전하는 박기웅(61) 작가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 “방탄소년단처럼 순수예술분야에서도 한류스타 나오길”

“최근 전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가수 ‘방탄소년단’처럼 순수예술분야에서도 한류스타가 나오길 진심으로 소망 합니다”

일제 강점기 양곡창고를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의 메카로 탈바꿈된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오는 12월까지 3개월 동안 전시회를 갖는 전(前) 홍익대 미대교수 박기웅 작가.

이북출신으로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이 부산에서 마지막 군 복무를 마치고 정착하면서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홍익대에 진학후 줄곧 서울에서 화가의 삶을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미술부 활동을 했죠. 덕분에 사생대회에 자주 출전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죠”

그는 고등학교에서도 미술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적성검사에도 미술 계통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와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하게 됐단다.

7년 정도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5년 전 평소 꿈꾸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작가로서 제2의 삶을 꾸리려고 교수직을 내놓았다.

2000년 초기 전주대학교에서 미술학과 강의를 2년 정도 했다. 그래서 전북 전주와 인연은 깊다고 한다.

현재는 김포 통진에 아담한 작업실을 꾸미고 진지한 예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박기웅 작가의 금속 소재로 만든 작품

■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고정적인 틀에 가두기 싫다”

“저는 미술 분야를 조각, 회화, 공예, 설치 등 한 장르만을 고집하지 않고, 통합계념으로 예술을 바라보며 장르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철사로 회화 작업을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조각이기도 하다는 것.

“장르를 세분화하면 전공 간에 대립개념이 있어 아쉬움이 남죠”

그는 미술의 여러 분야를 서로 소통하게 하고 싶어 한다.

“회화하며 조각도 하고 싶었죠.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죠”

그가 대학 교수직을 관두고 자유를 추구한 가장 큰 이유다.

장르 구분을 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작품 활동하는 걸 행복해 하는 그는 어찌 보면 ‘미술계의 돈키호테’다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아닌가요? 고정적인 틀로 저를 가둬놓고 싶지 않아요”

금속을 소재로 활발한 작업세계를 펼치고 있는 그는 두터운 철판을 잘라내어 휘고 엮듯이 형태를 구축해 특유의 방법으로 작품을 풀어내고 있다.

철사 드로잉으로 진행한 많은 작품 등 소재를 다루는 기법의 변화에서부터 내용과 형식의 변화, 주제 의식의 변화 등 금속이라는 소재를 다채롭게 표현해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작품이 많이 팔려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도 있었다.

2003년 개인전 때 25개 작품 중 23개가 팔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기웅 작가의 금속 소재로 만든 작품.

■ 작품 보관 장소 없어 수백여점 작품 버려...보전성 강한 금속회화에 더 애착“

“작품 보관 장소가 없어 우사에 보관했던 적이 있었죠. 장마 때 비가 넘쳐 천으로 만든 수백여점을 버렸습니다. 작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전방법도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죠. 작품을 잃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요”

그는 회화 작품은 30년이 고비라 한다. 첫 색상이 바래 변색된다는 것.

“회화 작품의 약점은 보전성이 약하다는 거죠. 불과 습기에도 약해 시간이 흐르면 고유의 색상이 변질되죠”

그래서일까? 그는 금속회화에 주력한다. 색상도 반영구적 칼라를 사용한다.

금속회화는 시간이 지나도 보전성이 매우 강하다.

특히 습기에 강하고 열에 강해 변색이 없다. 그래서 금속 재질을 이용한 작품에 특히 관심이 많다.

가끔이지만 스테인레스나 알루미늄 재질도 사용해 색다른 작품도 빚어낸다.

그는 언제나 창작활동을 격려해주는 아내와 함께 가끔 단촐한 여행을 함께 하며 작품 구상도 한다.

그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을 담은 작품 만들기를 좋아한다. 소중한 가족도 작품의 모티브인 건 당연하다.

그는 작은 감정을 모으고, 평범함 속에서 소재를 찾으려 노력하는 세심함을 지녔다.

“예전엔 인류역사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 때도 있었죠”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친구 가족 이웃에 나오는 작은 소품에 애착을 가진단다.
박기웅 작가가 금속 소재로 독특하게 만든 작품.

■ “삼례문화예술촌처럼 미술시장의 지방시대 실감”

“이곳 삼례문화예술촌을 보고 미술시장의 지방시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예술촌의 하루 방문객은 수백 명에 달할 정도로 북적인다.

“서울 인사동거리의 명성은 옛말이죠. 높은 임대료와 상업화에 갤러리의 인기도 시들해진 게 현실이죠”

그가 삼례문화예술촌처럼 지방의 문화예술이 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함도 당연하다.

그는 개인전을 80회 정도, 해외아트페어를 40회 정도 했던 실력파 중견화가다.

게으르지 않으려는 마음에 1년에 평균 1~2회 정도 개인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내외 300명, 해외 100여명이 제 작품을 소장하고 있죠. 더 작품 활동에 매진하라는 격려라 생각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는 현재 5가지 장르에 만족하지 않고 장르를 더 넓혀 나가며 자기계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장르의 억압하는 구조 때문에 표현의 제약을 받는 게 아쉽죠. 여러 장르의 작품을 하니 표현의 자유를 더 느껴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적 거장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여러 장르를 섭렵했다고 한다.


박기웅 작가가 용접기를 이용해 금속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 “스스로 장르에 얽매인 화가들 많아 아쉽다”

“요즘은 표현의 자유가 주어져도 스스로 장르에 얽매인 화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1870년 이전은 모더니즘 이전 시기로 황제, 교황, 귀족 부자들의 요청으로 미술작품을 주문 제작하던 시기다.

특권층이 예술가의 운명을 좌우해 작품의 주제가 한정될 수밖에 없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모더니즘 이후 시기는 예술계의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주제도 서민 애환이 담긴 주제를 다루며, 귀족이 원하지 않은 주제도 작품에 다뤘던 시기였다는 것.

“저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싶어요. 미술사는 5년 단위로 새로운 양식이 생겨 변화하는 게 현실입니다”

세계적 거장인 피카소도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댔다는 것.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교습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현대 미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며,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하는 미술 장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죠”

그의 작품은 ‘끼 있는’ 작품이 많다. 여기에 유머와 섹슈얼리티(sexuality) 요소를 가미했다는 평이다. 용접 기법에도 독특한 노하우가 숨겨져 있다.

“저는 해외에 나가 전시회도 자주 합니다. 매번 전시회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동서양이 동시에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시각적인 언어 요소가 가미된 글로벌한 작품으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머리카락 0.6밀리미터 철사를 이용해 인물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크용접까지 해야 되죠. 머리카락을 만들려고 한 땀 한 땀 일일이 만드는 작업을 마치면 제 스스로 보람되죠”
박기웅 작가의 금속소재로 만든 독특한 작품.

■ “교육시스템 바꿔야 세계적 명성 지닌 예술인 나온다”

“순수예술은 왜 세계적 명성을 얻는 인물이 나오지 못할까” 저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교육제도에서 찾고 싶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지 못하는 교육구조에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조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과 가르치는 시스템이 너무 달라 영국에서 2년 정도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이론 설명형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는 데 비해, 영국은 토론식 논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란다.

처음엔 논문 접근방법 등 공부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국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교육방식에 깊은 공감대를 느낀다고 한다.

특히 학생 수가 30~40명 정도인 한국 대학의 현실과는 달리, 영국은 3~4명으로 한정해 교수가 제자에게 1대1 교육을 통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강점을 들었다.

결국 주입식 위주의 한국형 교육시스템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

그는 독일의 경우처럼 한 스승이 문하생을 10~20년 긴 시간을 책임 지도하는 ‘책임지도제도’의 도입을 강조한다.

세계적 거장을 키워내는 교육구조의 변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란다.

■ “건강 허락할 때까지 작품 통해 세상과 끊임없는 소통“

박기웅 작가는 한때 전남에 있는 ‘광의 예술인마을’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주변 마을과 군부대 담장 등에 벽화를 그리는 등 색다른 경험담도 쏟아냈다.

요즘은 예술인마을에서 나와 김포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과 함께, 10여명의 문하생에게 화가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멘토링 역할도 하고 있다.

작업 공간 옆에 교육 공간도 마련해 집중도를 높이니 실력도 부쩍 늘었다며 보람을 느낀단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작품을 통해 세상과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싶어요”

그는 ‘상상, 표현, 감상의 자유’도 강조한다.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 관객들이 자유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기만 해도 교감을 나누길 희망한다.

다양한 장르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세상과 소통하는 박기웅 작가의 손끝은 오늘도 한 땀 한 땀 혼을 빚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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