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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전 교육감의 가석방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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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곽노현 전 교육감의 가석방을 넘어서

[기고] 사후매수죄 폐지해야

지난 주 목요일(14일)에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과 관련하여 검사가 제기한 재상고에 대한 선고를 보고자 대법원에 갔다. 대법원의 선고는 지극히 짧다.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말로 강경선 교수의 무죄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1년 6월 이상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참으로 씁쓸한 종결이었다. 18일 저녁 뉴스는 3월 29일자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가석방 결정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하여 풀어야할 매듭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선 공소시효를 둘러싼 헌법소원이 계류 중이며, 선거일 이후에 발생한 사유로 소급해서 선거비용을 추징한다면 과잉처벌, 이중처벌, 소급처벌로서 위헌적이라는 쟁점도 남아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부채로 인하여 곤경에 처한 박명기 당시 서울교대 교수를 돕자는 강경선 교수의 제안을 수용하여 2억 원을 제공한 데에 있다. 곽 교육감은 매수가 아니라 지원이라는 확신 속에서 교육감직 사퇴를 거부하고 재판을 감당하였다. 2억 원의 의미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며, 재판부 간에도 법리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결국 곽노현과 박명기를 유죄로, 강경선을 무죄로 분리 확정함으로써 곽노현 끌어내리기라는 권력의 목적은 실현된듯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막바지에 법이 무엇인지, 법률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한 혼란을 느낀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법무부의 의견서에서 나타난 미묘한 문장에서 이른바 '멘붕'에 빠졌기 때문이다. 유죄판결의 핵심논리를 완전히 증발시키는 문제의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보겠다.

"한편 이른바 정책연합에 따른 후보단일화는 그러한 논의가 사퇴자에 대한 선거비용 보전 등 금전과 관련되는 경우 자칫 후보자의 자질보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질 우려도 있고, 만약 그러한 선거비용 보전이 합법적으로 형성된 정책연합의 합의사항 실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당해 선거비용 보전이 선거 문화의 타락을 유발하여 선거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의 대가성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헌법재판소 2012. 12. 27 선고 2012헌바47 결정. 헌법재판소 결정문 14쪽)

"청구인이 주장하는 정책연합에 따른 후보단일화의 경우, 선거비용 보전 등이 합법적으로 형성된 정책연합의 합의사항 실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당해 선거비용 보전 등이 선거문화의 타락을 유발하여 선거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후보사후매수죄의 대가성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헌법재판소 2012. 12. 27 선고 2012헌바47 결정), 그 경우 이 사건 법률 조항 역시 적용될 여지가 없습니다."(법무부의견서(2012헌바383호) 18쪽)


이게 무슨 소린가? 법정에 갔다면 경험하듯이 법담당자들은 피고인이든 증인이든 누구에게나 사실만 말하라고 호통을 친다. 마치 그들은 법이라면 훤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과연 그런가! 검찰이 온갖 매체를 동원하여 주장했던 후보매수가설과 바로 앞에서 전개된 선거비용이론은 서로 다른 것인가? 검찰과 법원은 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시작하여 처벌만 달성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법의 무성한 불확실성 속에서 정치적 처벌의지만 작렬했다. 돈을 주기만 하면 대가성이 있다던 검찰이 선거와 정치에서 비용이 발생한다는 정상성을 고분고분하게 인정한 것이다. 저번에 대가성이 있다고 후보매수죄로 기소했던 바로 그 실체를 이번에 정치비용의 논리로 허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뒤늦은 평가가 곽 전 교육감 사건의 결론을 바꾸지 않았다. 언제 실질적인 반전이 이루어질까? 어쩌면 개혁정치인에게는 매수논리로, 보수정치인에게는 비용논리로 분할통치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대의제 민주국가 중에서 후보사퇴와 관련한 금전제공을 범죄로 규정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미국에는 승리자가 패배자의 선거비용까지 감당해주는 관행도 존재한다. 선거의 대원칙은 선관위와 권력의 감시선거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선거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선거법은 권력의 칼에 가깝다. 선거제도가 우리만의 독특한 정치방식이라고 과연 우길 수 있는가? 천황제 사이비 입헌국가 일본이 80여 년 전에 천황의 시선으로 빚은 정치규제조항을 우리는 이번에 맹목적으로 적용하였다.

생각해보라. 정치는 언제나 비용을 수반한다. 정치를 무비용 가정에 입각해 상상하는 도덕주의자는 결과적으로 자산가 계급에게만 정치를 허용할 것이다. 정치 자체가 범죄가 아니라면 이 사건을 처벌할 수 없었다. 공직선거법뿐만 아니라 정치관계법은 마땅히 정치의 비용을 정상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나아가 정치관계법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하고, 후보자에 대한 찬반운동을 자유롭게 펼치고, 대표자의 선출을 넘어 정치의 다양한 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유정치와 참여정치를 확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치질서는 개혁적 야망을 가진 신참을 잡아먹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제공한 것은 기본적으로 선거부채와 연관된 것이다. 공직선거법에 사퇴한 후보자에게 당선자가 일정한 조건 안에서 비용을 보전해주는 절차가 현행법제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곽노현 교육감은 개인적으로 선거비용의 일부를 처리해주었다. 박명기 교수는 자신이 선거를 위하여 그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 문제를 단 한 번도 비용처리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이제 검찰이나 헌법재판소는 수수한 금액이 선거비용 보전을 위한 것이라면 정상적인 행위라고 상정하였다. 법의 불확실성은 이제 더욱 증폭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선거법이 후보연합과 사퇴자 비용처리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정치과정의 필연적인 비용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법의 불비로 인하여 정상적인 행위가 범죄로 처벌되었을 뿐이다.

필자는 선거비용이 거의 발생하지도 않았는데도 고액의 사례금을 지급하거나 사퇴자에게 발생한 선거비용보다 거액의 금액을 사퇴자에게 제공한 경우가 아니라면 후보매수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치연합의 일환으로서 특정후보가 사퇴했다면 그 사퇴로 인해 이익을 누린 당선자나 완주자가 자신의 선거비용 중 일정비율 한도 내에서 사퇴자의 선거비용을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는 민주국가에서라면 전혀 범죄가 될 수 없는 행위를 온갖 공력을 들여 죄를 만들고 처벌하였다. 이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국회가 나서야 한다. 사후매수죄를 폐지하거나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사퇴자의 비용처리에 관한 합당한 규정을 공직선거법에 추가해야 한다. 동시에 억울한 처벌에 대해 법치국가의 시정책인 사면ㆍ복권을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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