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일주일 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과 화성씨랜드 유족 어린이 안전재단 고석 대표가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대형 참사와 재난으로 이미 가족을 잃은 이들이 또다시 재난 현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 유족 유경근 씨는 프랑스의 재난 참사 피해자 협회 연대 '펜박(FENVAC)'을 찾아간다. 천안함 생존자 최광수 씨는 군 전역 후 프랑스 유학 중 '펜박'을 알게 됐다. 이들이 '펜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CBS라디오(98.1㎒)는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총 4부에 걸쳐 유족들이 또 다른 '유족의 911'이 돼 삶의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전한다.
해외 특집 르포 <남겨진 이들의 선물>(정혜윤 연출)은 세월호, 대구 지하철, 화성 씨랜드, 태안 해병대 캠프, 천안함 등 국내 사례뿐 아니라 9·11 테러, 콜럼바인 총기 난사, 플로리다 파크랜드, 에어프랑스 추락, 파리 테러 등 해외 사례도 담았다.
유족이 또 다른 '유족의 911'이 되다
르포 <남겨진 이들의 선물>을 연출한 정혜윤 피디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족들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해서 체념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명예롭게 할 줄 알았다"며 작품의 모티브가 된 세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는 태안 해병대 캠프 유족들의 일화에서 가장 큰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제일 먼저 현장으로 달려온 이들이 현장에서 들은 말은 "당신들 누구야?"였다. 태안 해병대 캠프 유족들은 당황했고, 순간 이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난 작년에 태안 해병대에서 죽은 ○○의 아버지다."
정 피디는 "참사와 재난을 겪은 유족들이야말로 현장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 또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달려온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태안 해병대 캠프 유족들은 사실상 '당신은 여기 올 자격이 없다'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으로, 세월호 유족 유경근 씨에게 재난 현장으로 출동하는 '펜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꼽았다. 정 피디는 재난을 당한 사람이 재난 현장에 '출동'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족이 가장 무력한 사람들 또는 희생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변화(희망)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발견된 세월호 4층 선미 유리창을 보기를 두려워하던 유족 최경덕 씨가 동시에 깨지지 않은 유리창 한 장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며,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느꼈을 때. 정 피디는 9.11테러 유족을 만나서도 유리창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희망"이었다.
정 피디는 이번 작품을 제작하면서 "혼자가 아닐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며 "제작 과정 자체가 '우리가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그런데 그 질문이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면?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법을 찾는 질문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슬픔이 어떤 일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준다"며 "어떤 사건에 눈물을 그렇게 많이 흘렸다면, 그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슬픈 사람들이 슬픈 사람의 어깨를 끌어안지 않나. 우리에게는 자아를 넘어서서 함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쓰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능력을 배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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