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파른 경사에 압도당하지 않고 몸을 땅에 버티고 마찰의 여지를 만들어가면서 움직이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느 새 어떤 곳은 이미 미끄러운 빙판이 되어 사람도 차도 어찌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고, 그로써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그곳에서부터 새로 만들어 가야 하는 고된 노동이 되기도 합니다.
눈이 내려 산하(山河)를 덮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가옥을 마치 고고학자가 땅속을 뚫고 발굴해야 하는 고대 유적지처럼 만들어버리는 폭설은 그만 재해가 되고 맙니다. 일본의 해안 지대에 이어져 있는 마을들이 그렇게 눈 속에 파묻혀버리고 만 것은 생존의 격렬한 쟁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태양이 내리 쪼이고 시간이 지나면 녹아버리고 말겠지만, 제설작업이 그리 만만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냉기가 몰아치고 빙판이 되어버린 언덕길을 거슬러 오르거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내려가야 하는 도시나 촌락은 그저 어느 계절의 특별한 풍경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건, 어쩌면 오랜만에 바람 몹시 부는 광야에 홀로 외롭게 서보는 일이기도 하고, 자신이 딛고 있는 땅에 얼마나 자신이 단단하게 서 있는지를 한번 시험 삼아 가늠해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일이란 그렇게 각이 높게 진 경사로를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일의 반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푸스는 언덕 끝까지 힘들게 돌을 굴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또 그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무의미한 노역에 시달리는 존재를 상징하는 동시에, 우리가 인생의 짐을 감당하는 정작의 뜻을 망각해버리고 말 때 우리 자신도 시지푸스의 비극적 운명과 그리 달라지지 않음을 일깨워주고 있기도 합니다.
누구든 빙판에서 일부러가 아닌 다음에야 미끄러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그 비탈에서 넘어져 입고 있던 옷을 더럽히거나 들고 있던 물건들을 놓쳐버리는 일을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는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다가 결국 무너져 상처받는 사태가 오기를 갈망하는 이 역시 없을 것입니다.
겨우 오른 정상에서 갑자기 추락해버리거나, 목표를 눈앞에 보고도 노면사정이 나쁘다고 포기해버리고 길바닥에서 외투도 없는 채로 노숙(露宿)하기를 원하는 이도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기습해오는 추위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의복의 무장과 함께, 온몸을 잔뜩 긴장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사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자세가 되는 과정입니다.
비탈길의 현실은 그런 사정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가 목표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과제를 평소보다 난해하게 부여합니다. 정상참작이 없습니다. 어디에서 난데없는 사태가 발생할지 사전에 알 수 없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교란시키는 마찰계수 0의 복병까지 숨어 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을 겪고 거쳐 가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훈련되어갈 것입니다. 아무런 도전이 없는 평지만 걷고, 급격한 계절의 변화를 걱정할 이유가 없는 온화한 기후에서만 살며, 이미 모든 것이 마련된 듯한 보호 장치 아래 있는 안전한 인생은 얼핏 부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기를 시험해보는 흥분이 없으며 가파른 언덕을 결국 오르는 성취감이 존재하지 않고 실패했다 해도 다시 시작해보는 의지와 용기를 맛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구든 인생이 평탄하기를 바라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몰아치는 추위와 순식간에 얼음이 되어버리는 눈, 그리고 가파른 비탈길의 경사가 주는 인생의 묘미가 있습니다.
때로 넘어지고 깨져도, 그걸 마침내 돌파하는 자의 즐거운 감격이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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