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는 장애인 예산 확충을 요구하는 지체 장애인 20여 명과 경찰이 위태위태한 대치를 벌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온 몸으로 땅을 밀어내며 힘겹게 스물여덟 계단을 오른 후였다.
국회를 향해 힘겹게 오른 계단이었지만, 2010년도 예산을 논의 중인 국회의 문은 굳건했다. 경찰은 본청 계단 앞을 기어오른 장애인들을 막아서며 곧바로 해산 경고를 시작했다.경찰의 경고 방송과 장애인들의 구호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실랑이 끝에 쓰러진 몇몇 장애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 경찰이 장애인 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국회 앞 계단을 올라온 한 장애인을 막아서고 있다. ⓒ프레시안 |
이들이 국회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까닭은 2010년 장애인 복지 예산이 전년 대비 187억 원 삭감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장애인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발표된 예산안은 초라했다. 탈시설 장애인 초기 정착금 예산 5억 원이 전액 삭감됐으며, 장애인 시설 보강, 장애인 차량 LPG 지원, 장애아 무상 보육 지원, 저상 버스 도입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특히, 장애인의 팔과 다리 역할을 해온 장애인 활동 보조 서비스 역시 2010년 서비스 대상 인원이 3만 명으로 제한되는 등, 활동 보조가 필요한 지체 장애인 수에 크게 밑도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2010 장애인 예산 확보 공동 행동' 등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 11월 2일부터 장애인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여왔다. 한파 속에서 한 달을 넘게 버텨온 농성이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공동 행동의 김진영 활동가는 "지난 한 달간 천막 농성을 했지만 장애인 예산에 대한 어떤 답변도 정부로부터 듣지 못했다"며 "이제 우리도 지긋지긋하다. 뼈가 뒤틀리는 고통을 참으며 차디찬 계단을 오르는 우리의 심정이 어떤지 정치인들이 생각이나 해봤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예산과 맞바꾼 4대강…그곳엔 장애인의 눈물이 흐를 것"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문애린 활동가는 "예산 몇 퍼센트 삭감에 생존권이 오가는 사람들이 장애인인데, 그 얼마 안 되는 예산조차 깎은 이명박 정부에게 서민 정치는 기만일 뿐"이라며 "장애인도 사람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에 혈세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정부 지원이 절실한 장애인들의 복지 예산부터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예산 확충없는 민생 예산 기만이다!' ⓒ프레시안 |
▲ 한 장애인 활동가가 국회 앞 계단을 오르다 경찰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프레시안 |
▲ 이날 국회 앞에서는 국회 안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장애인단체 활동가와 경찰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프레시안 |
앞서 이날 오전 국회 앞 계단에서는 4대강 사업 예산 삭감을 촉구하는 '민생 예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예산 대회에는 각 야당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4대강 예산 편성과 부자 감세를 중단하고, 민생 예산을 확대하라"는 성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관련 기사 :야4당·시민단체 '4대강 예산 폐기' 한 목소리)
이날 예산 대회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은 행사가 끝난 후 국회 본청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기습 시위를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떠난 자리, 그 곳엔 국회 계단을 오르며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이 있었다.
"한나라당은 지금 우리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숫자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 보조가 없으면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그 예산조차 깎으면서 4대강 사업에는 22조 원을 쏟아 붓는다고 합니다.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장애인 예산과 맞바꾼 그 4대강에는 장애인의 피와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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