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연재만화 제작 지원사업에는 총 174개 신청작이 있었으며 1차 심사 통과 작품은 77개로 유승하 작품 ‘끈’은 1차 심사 통과 작품 중 3등이었다. ‘끈’은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진술인의 신청서에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세월호"냐는 발언을 했다고 당시 심사에 참가했던 심사위원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1차 평가에서 10위 안에 든 작품 중 유일하게 ‘끈’만 최종 탈락했다. 심사위원 7명 중 콘텐츠 진흥원 사업팀장인 000을 포함해 3인이 ‘끈’에 최저점수를 줬으며, 50점대 점수를 두 명에게 받은 작품은 ‘끈’이 유일하다. 000팀장은 77개 작품 중 총 8개의 작품에 최저 점수인 61점을 줬으며 이 중 ‘우리만화연대‘ 회원 작품은 3개이다. 이 3개의 작품 중 ‘끈’은 세월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명태’는 국정원 직원과 북한이 무대로 등장하고, ‘광야’는 일제 강점기가 시대 배경으로 등장한다.
심사위원 7명 중 70점 이하로 평가한 4명의 평균 점수는 58.75점이고 70점 이상으로 평가한 3명의 평균점수는 81점이다. 한 심사위원의 경우 본인이 최저점을 준 작품 두 개가 모두 우리만화연대의 작품이다. '끈'의 경우는 1차 평가 3등, 2차 평가 66등으로 1차 평가와 2차 평가의 차이가 가장 컸다. ‘끈’에 대한 평가 의견은 “재난, 사회적 이슈를 만화로 이끌어내는 시도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아직은 만화로 끌어내는 데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짐”이라고 하며 세월호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소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발간 진상조사결과보고서(48쪽 중 36쪽)
나에게 이 일은 엉키고 꼬인 실타래 같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위로 이 부분의 기억을 잘라 내버리고 싶기도 하다. 지나간 일 뒤돌아보며 연연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세금 내는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라고 '찍힌' 것은 나를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도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더럽기도 하고 불쾌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 책임규명안에 대한 문체부의 답이 '징계 0명'이었다 한다. 진지한 사과와 명예회복, 배보상은 고사하고 다시 존재를 부정당한 듯 화가 난다. 그래서 억지로, 어렵사리 기억을 꺼내본다.
3년 전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삽화와 표지 작업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말문이 막혔다,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내가 미안하고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고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그때 책을 주도적으로 쓰신 르포 작가에게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내가 눈길 피하고 싶고 어쩔 줄 몰라 했던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분들의 기록이라고.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며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면서 녹음테이프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낼 수 없는 르뽀 작가 개인 사정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게 만화였다. 만화는 유가족 분들에게는 작지만 위로가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실과 감정을 같이 전달할 수 있으면서 사회와 유가족을 연결시켜주는 공감의 끈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우선 녹음된 한 편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어 <보고>라는 만화잡지에 30페이지 단편으로 실었다. 구명조끼를 끈으로 연결해서 같이 발견된 두 아이 중 한 명의 이야기. 한 학급이 거의 숨진 7반 정인이 이야기. 아버지는 홀로 애지중지 키운 큰 아이를 먼저 보내고 나서 이가 다 빠지는 고통을 겪고 버티는 중이었다.
그리곤 처음으로 창작지원금 신청을 했다. 이런 지원금은 신인들에게나 발표 기회가 어려운 작가들, 그리고 시장에서 불리한 예술 작가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다행히 지원금 없이도 출판이 가능한 기성 작가였다. 그럼에도 신청한 이유는 언론에 나오지 않은 세월호 유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신청했다. 진실규명을 하지 않고 답답한 소리만 하는 정부에 대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지원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부족했나 싶어 당혹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가급적 빨리 잊었다. 이후로 3년간 개인 사정으로, 다른 작업으로 바빠서 스토리 만화는 3년 동안 하지 않았다. 이 일도 자연스레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내가 세월호라는 소재 때문에 블랙리스트로 탈락되었단 걸 듣게 되었다, 세월호라는 사건의 특징이랄까. 어떤 일을 겪어도 그 유가족과 생존자들 고통이 워낙 심해서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깟 블랙리스트 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넘어갔다. 그런데 가끔 생각나 화가 올라왔다.단체로 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조사 과정에서 나는 세월호 건만이 아니라 '우리만화연대'라는 단체의 회원, 그리고 이전 박원순 지지 선언으로 세 가지가 걸려 있다고 들었다. '우리만화연대'는 국정원이 관리한 16개 중점관리단체 명단에도 들어가 있었다. 반대로 보자면 화려한 이력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만화 건 외에 다른 두 가지 사안은 유치해서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박원순 지지선언은 내가 아이들 책을 많이 해 온 작가라서 식판을 들고 벌거벗은 아이의 사진을 내걸고 무상급식 반대하던 오세훈 전 시장에 대한 반감으로 서울시민도 아닌 처지에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았나 싶다.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진보적인 다른 만화가들이나 시사 만화가들은 모두 빠져 있는 것으로만 봐서 지지선언이란 명단 자체가 별 의미도 없고, 윗선에서 블랙리스트를 요구하니 억지로 명단 제출한 듯 추출된 명단으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리만화연대' 회원이라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이보다 더 어이상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25년째 우리나라 만화 문화를 이끌어가는 회원 200여 명이 넘는 만화가 단체이다. 오래된 단체의 특성이겠지만 생각과 활동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관계가 몹시 느슨한 대중단체이다. 단체 중에 '우리만화연대'가 유일하게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은 아마도 문체부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공무원의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대중 단체를 블랙리스트로 올린다는 이 창조적인 발상은 문체부이기에 가능한 것인가? 궁금하니 밝혀주길 바란다. 이 모든 진실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집안에서 성실한 딸로 초중고 시절 모범생이려고 노력했고, 사회 나와 가정을 이룬 후에도 그렇다. 집에서 만화를 그리는지라 동네에선 나를 전업주부로 알고 있으며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싸움은 당연히 싫다. 이 사건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이런 상처와 괴로움은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보상해주는 것일까. 왜 내가 수십 년 착실하게 세금 내며 살아 온 이 국가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까. 주부작가로서 20년간 아침 여섯시 일어나 밥을 차리고 방학이면 가족 네 명의 밥상을 하루 세끼 차리며 살림과 작업을 양립해왔다.(내가 정부라면 나에게 상을 주리라.)
가급적 소송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보다도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이름도 올렸고 소송을 걸었으니 끝까지 책임을 묻고 사과를 듣고자 한다. 피해 받은 사람들은 있는데 잘못을 한 공무원은 없단다. 과거 정부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 낙인찍는 어쩔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치더라도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것이다. 듣자하니 징계 받은 직원이 한명도 없다고 한다. 그럼 유야무야 넘어가겠다는 것인지. 예술을 넘어서 인생 최대의 가치를 자유로 여기는 시대에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사상, 표현, 문화향유의 자유 등을 짓밟은 블랙리스트는 구태 중에 구태인 부끄러운 사건이다.
만화는 상대적으로 깨알 같은 노동에 잔손질은 많고 성과에 비해 화료는 부족한 노동집약적 예술이라서 집과 작업실을 벗어날 여유도 없다. 이 건으로 불려 다니는 걸 걱정할 지경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11월 3일 오후 1시, 참다못한 나 같은 이들이 모여 '적폐청산! 블랙리스트 책임자처벌! 2018 문화예술인 선언 및 대행진'을 진행한다. 그간 역할을 미뤄 온 국회와 청와대 면담도 진행키로 했다고 한다. 부디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화를 내기 전에, 거리로 나오기 전에 현명한 정부와 국회에서 진정한 책임자 처벌과 사과와 보상, 미진한 진상규명에 대한 대안을 내주실 거라 믿어 본다.
적폐청산!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2018 문화예술인 선언 및 대행진> 참여하기블랙리스트는 4대강, 용산, 밀양, 강정, 쌍차, 희망버스, 세월호, 5.18 등 사회·역사 문제에 연대한다는 이유로 청와대 국정원 문체부 등이 순차공모해서 1만여 명의 참여 문화예술인들을 10여년 간에 걸쳐 사찰·검열·배제·고사 시키려 한 희대의 분서갱유였습니다. 노동자·민중·시민의 기본권인 양심·표현·사상·출판·문화향유권 등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 짓밟힌 헌법농단 사건입니다. 블랙리스트는 언론·교육·사법·인권·복지·노동 등 모든 부문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그 진상규명의 첫 단추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문체부의 '징계 0명' 셀프면책에 의해 축소·은폐·왜곡되고 있습니다. 11월 3일 13시부터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각종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 ‘미진한 진상규명’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사회적 선언과 대행진을 제안 드립니다. 문화예술인·촛불시민·노동자들의 선언 참여와 대행진 동참을 요청, 부탁드립니다.[선언 및 대행진 참여 방법]◎ 아래 구글독스에 직접 참여하시고, 3000원 이상의 연대기금을 납부해주시면 됩니다.◎ 단체, 모임 별로 명단을 메일, 문자 등으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마임, 무용, 미술, 풍물, 연극 퍼포먼스 등이 함께 하는 신나는 저항축제이기도 합니다. 당일 현장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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