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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색깔론, 이제 거울을 비춰주자"

[시민정치시평]대통령 후보에 대한 '사상 검증', NLL 공세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할 때 우리는 흔히 부동산 투기, 탈세, 이중 국적, 병역 회피, 논문 부정 등을 떠올리지만, 이것들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검증 항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른바 후보자의 '사상 검증'이다. 전자의 검증 항목들이 비록 이명박 정부에서 후보자의 결격 사유이기는커녕 오히려 필수 요건인양 희화화되긴 했으나,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그것들은 자질 평가의 핵심 요소들임이 분명하다. 반면, 흔히 '색깔론'으로도 불리는 후자 즉 '사상 검증'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계보를 잇는 한국의 보수 세력이 지난 수십 년간 반대파 탄압에 사용해온 전가의 보도이다.

유력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은 독재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친북 용공의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빨치산 전력을 들이대는 한나라당의 사상 검증을 통과해야 했다. 2012년 2월 새누리당은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준안을 부결시켰다. 그리고 최근 새누리당은 밑도 끝도 없는 NLL 공세로 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을 향해 사상 검증 검증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대통령 후보가 마치 간첩이라도 되는 양, 보수 세력은 정상적인 민주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친북과 이적의 사상 검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수 세력의 NLL 공세는 참으로 기묘한 상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선,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 포기 약속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아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또한, 지정기록물 제도가 대통령 기록 변조와 훼손을 막고 중요한 국가기록을 후손에게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남북정상 대화록을 마구 들여다보는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에 속한다. 나아가, 보수 세력은 마치 NLL이 북한으로 넘어가기라도 한 것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10.4 선언을 포함한 노무현 정부의 남북 공식 합의문서 어디에도 남한의 NLL 포기 입장을 찾아볼 수 없다. 설사 그들의 주장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취지의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NLL에 관한 현실이 새롭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이처럼 기이한 상황을 토대로 보수 세력이 벌이고 있는 NLL 공세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노무현 전 정권을 서해 '영토선'을 북한에 넘겨버린 친북 집단으로 몰아가고, 야당 세력을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집단으로 낙인찍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의도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민주주의란 다양한 욕구와 신념을 지닌 개인들과 집단들의 이질적 집합체가 서로 다른 의견을 제출하여 경쟁하면서 고차적인 동일성을 창출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한국의 자칭 보수 세력은 남한에 한정되는 데 그친 정부 수립, 반공, 한미동맹,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 산업화 등이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반면, 친일과 식민주의 청산, 유신 군사 독재와 인권 탄압, 분단체제 해소, 저임금 장시간 노동 구조 등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거의 기계적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종북·친북 행위로 몰아붙인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에 그들은 친북과 종북의 낙인을 마구 찍어댄다. 그리고 최근 보수 세력의 NLL 공세는 자신들이 아주 좁게 설정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이견을 국가 정체성의 파괴 요소로 보는 전체주의 우파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 ⓒ청와대 사진기자단
보수 세력의 사상 검증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은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며 "일방적으로 그은 작전선이기 때문에 영토선이라고 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한 민주평통 연설 자체가 이미 친북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한의 정치 지도자는, NLL 부근이 아무리 남북 군사대결의 화약고가 되어 있더라도, 긴장 완화와 평화 유지 정책 마련에 필요한 법적 역사적 사실들을 따지고 고민해서는 안 될 듯싶다. 그리고 자신의 눈과 귀를 틀어막은 채 오로지 "NLL은 영토선"이라는 주문만을 외워야 사상적으로 불순하지 않은 정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사상 검증은 NLL을 둘러싼 많은 논란(NLL이 1953년 정전협상 당시 해상 경계선이 설정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는 사실, 1965년 남한 해군 함정이 북측 가까이 못 가게 하기 위해 유엔 해군사령관이 공해상에 그은 선이라는 사실, 1973년부터 NLL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1999년에 서해 5도를 모두 포함하는 자신들의 남방한계선을 선포했다는 사실, 1999년 이후 NLL 주변은 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폭격 등 남북 군사 대결의 화약고가 되어왔다는 사실)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논쟁을 불용할 정도로 사상의 백골단 같이 황량한 그들의 정신세계를 드러낼 뿐이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월 29일 "국가 안위에 대해서 확실한 답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는데, 과연 그들의 색깔론과 사상 검증은 자신들을 국가 안위의 수호신처럼 포장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최근 실제로 거둔 안보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10년 3월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 2010년 11월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 2012년 9월 탈북자가 서부전선 해안 감시망을 넘어온 사실을 6일이나 지나서야 파악한 사건, 2012년 10월 2일에 일어난 웃지 못 할 '노크 귀순' 사건 등이 그 예들이다. 바다의 경계선은 물론 육지의 휴전선도 제대로 못 지킨 자신의 안보 무능에 쥐구멍이라도 찾아도 시원찮을 판에, 보수 세력은 특유의 후안무치를 밑천 삼아 사상, 안보 운운하며 야당과 시민을 상대로 드잡이 질을 하고 있다.

보수 세력이 단순히 전술적 필요성에 따라 사상 검증과 색깔론을 동원한다고 하면, 그들은 아마 억울해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진정으로 친북과 종북을 염려하는 반공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과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민주주의의 정당한 경쟁자로 보기 보다는, 국가 정체성을 위협하는 친북 세력으로, 따라서 배제하고 절멸해야 할 '적'으로 보는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의 색깔론은 아무리 그것을 "철 지난", "시대착오", "과거로의 역주행" 이라고 비난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등장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들에게 거울을 비춰줄 때이다. "사상의 백골단", "히틀러 추종세력", "전체주의 우파" 등과 같은 이름을 붙여주어,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그들의 전체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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