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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보다 못한 현대차의 공정함에 대한 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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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보다 못한 현대차의 공정함에 대한 관념

[시민정치시평]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철탑농성을 보며

영장류학자인 새라 브로스넌과 프란스 드 발 교수는 영장류에게 공정함에 대한 관념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03년 흰목꼬리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어떤 거래가 공정하지 않을 경우 흰목꼬리원숭이는 불공정의 시정을 요구하거나 거래 자체를 거부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런 반응도는 거래의 불공정성에 비례하여 높게 나타났다. 두 학자는 이 실험을 통해 이들 원숭이에게 공정함에 관한 관념이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는 위의 실험이 저절로 떠올랐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일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컨베이어 라인에 섞여 작업을 하거나, 동일한 작업이 아니더라도 정규직들과 '같은' 핵심 제조공정을 맡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정규직보다 더 힘든 강도로 노동한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급여는 정규직의 70∼80% 수준이고, 현대차의 경영상 필요로 인원감축이 진행된다면 정규직보다 우선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사실 앞에서 내가 고민한 것은 파견법을 비롯한 노동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안 같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글의 목적도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차별이 적용되는 양 당사자, 즉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로의 표정과 눈길, 숨결을 느껴야 하는 하나의 공간에 던져져 있는 상황을 먼저 떠올렸다. 이 상황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받는 이 차별적인 대우를 정당화할 만한 어떤 이론이 있을까? 어떤 종류의 정서적 동의나 묵인이 가능할까?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효용이론은 어쩌면 현대차에서 자본과 노동이 가져간 몫의 차이라든가, 정몽구 회장이 챙긴 두둑한 배당금을 시장 분배의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계효용이론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임금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정규직 노동자들 이상의 한계생산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 차별에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최신의 임금이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이 흰목꼬리원숭이 이상의 평등 관념을 갖고 있는 한 그런 이론이 있다한들 헛소리 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받는 이 차별적인 대우를 정당화할 만한 어떤 이론이 있을까? 어떤 종류의 정서적 동의나 묵인이 가능할까?ⓒ프레시안(최형락)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금융 전문가가 청소 노동자보다 월등히 많은 급여를 받는 것에 동의하거나 최소한 묵인한다. 그 자리에 도달하기 전에 투자된 시간과 비용의 차이를 그들 사이의 차등적 보수에 대한 근거로서 수용한다.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은 이런 종류의 동의나 체념도 가능하지 않다.

현대차가 자신에게 제기된 사회적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오히려 동문서답식 질문을 던지는 것은 세상의 어떤 궤변으로도 자신의 행태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10월 30일 '현대차 사내하청, 과연 사회적 약자인가'라고 비공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금 현대차에 제기된 사회적 질문은 '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차별하는가?'이다. 현대차는 여기에 대해 그들이 받는 평균연봉 액수를 제시하며 '그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고 말한다. 이것은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현대차는 또 최병승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적용된 구 파견법 고용의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중앙노동위의 재처분 결과에 대한 행정소송의 결과를 보자고 한다. 그러나 법 조항과 사법적 판결은 현대차와 사내하청 노동자들 중에서 어떤 쪽의 법률적 유불리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제기된 질문은 '그들은 왜 차별받아야 하는가?' 이고, 어떤 제도나 판결이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제도나 판결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흰목꼬리원숭이에 대한 영장류학자의 실험에서 연구되지 않은 것이 있다. 원숭이가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불만을 표시할 때마다 학습이 가능한 수준에서 처벌이 가해졌다면 원숭이는 공정을 요구하는 반응을 포기했을까?

나는 최병승·천의봉의 싸움이 위의 질문에 대한 인간 종의 답변이라고 본다. 철탑에 올라 자신을 묶고 27일일 째 버티고 있는 그들은 생물학적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 정신의 깃발이다. 그들이 높은 철탑에 오른 것은 만인이 그 깃발에 쓰인 문구를 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자본의 힘으로 법망을 피해 다니는 정몽구 회장도, 연대에 인색한 현대차 정규직 노동조합과 금속노조도, 자본에 유리하게 설계된 법조차 불리한 상황에서는 그 규범력을 부인하고자 하는 노동부와 경찰과 검찰도, 사회적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와 언론도, 그리고 먹고살기 바빠 세상의 불의를 못 본척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도, 이제 이 깃발에 쓰인 선명한 문구를 똑똑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평등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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