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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발상지 완주한지의 ‘천년의 맥’ 잇는 김한섭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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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발상지 완주한지의 ‘천년의 맥’ 잇는 김한섭 장인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한지마을 복원 - 한지문화 부활에 마지막 삶 쏟고 싶다"

완주군 대승한지마을 한지제조소에서 김한섭 장인이 제지공 작업을 시연하며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프레시안(이태영 기자)
문화와 예술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예술의 고장'인 전북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찾아 작품 세계와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은 완주한지의 천년의 맥을 잇는 한지의 장인이 주인공이다.

전북 완주 대승한지마을에서 '고려한지'의 전통을 살려내고, 한지마을 복원 열정을 태우고 있는 김한섭(75) 한지장인을 만나봤다.

“국내 최고급 한지 생산한 완주한지는 전주한지의 뿌리”

“쓱쓱~~~싹~싹~~”
전북 완주 대승한지마을에서 전통기법인 외발뜨기와 개량기법인 쌍발뜨기로 물질을 하며 전통 수제한지를 만들고 있는 김한섭 한지 제조 장인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과거에는 완주지역이 전주부에 속해 있어 전주한지로 이름 지어졌을 뿐 사실상 완주 소양이 한지의 발상지이며, 이제 그 맥을 잇는 작업에 저의 마지막 삶을 쏟고 싶습니다"

46년째 한지 사랑에 푹 빠진, 75세의 나이라고 믿기기 않을 만큼의 젊은 열정을 지니고 있는 김한섭 장인.
그의 전통 한지에 대한 자부심과 복원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전주한지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전주한지의 뿌리가 전북 완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조선시대 당시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궁중진상품이자 중국에 보내는 조공품에 속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완주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주산지로, 한때 전국 한지 공장의 80%가 몰려 있고, 한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김한섭 한지 장인이 쌍발뜨기로 한지만들기를 시연하고 있다. ⓒ프레시안(=이태영 기자)
마을 전체가 한지관련업으로 생계 꾸리는 등 자부심 대단

한지 제조의 연원은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벽암스님(607년경 추정)으로부터 완주지역에 제지술을 전파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송광사의 스님들이 종이 뜨는 기술을 동네 사람들에게 가르쳐 관에 종이를 납품했다고 한다.

닥나무 껍질을 가공해 거친 종이를 만들기 시작한 송광사에서 인근 대흥리, 소양, 동산, 고산, 상관, 구이, 진안, 무주, 경주, 괴산, 강원도 등지로 전파됐다는 한지업계의 추정이다.

완주군은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1980년대까지 많은 한지를 생산했다.

소양 면이 그 중심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장판지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한지체험관이 위치한 이곳은 소양 면에 속한 동네로 일찍부터 제지업이 성행했으며 현재도 소수의 한지장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일제가 전주한지의 매력에 빠져 소양면 소재지에 동양산업조합을 만들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한지를 독점해 개인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금할 정도였다"

이렇듯 면면이 이어온 전통한지의 역사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값싼 중국산 한지에 치었기 때문.

1985년 이런저런 이유로 한지공장들이 문을 닫기 전까지 대승마을에는 120여 세대가 한지관련업으로 생계를 꾸렸고, 한지공장이 11개소나 있었다. 특히 신원리 내에는 22개소의 공장들이 국내 최고급 한지를 생산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전국 한지 생산량의 25%를 이곳 소양면 일대서 공급하고 있었죠. 한지유통량의 대다수를 공급했던 서울 유수의 업체는 물론, 유명 문필방 등에서도 예약하지 않으면 공급받기 어려울 정도였죠"

완주한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한섭 장인이 지난 10월 13일 KTX 전주역사에서 전통 한지 체험행사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프레시안(=이태영 기자)

마을사람들과 공동으로 수천그루 닥나무 심어

전북 진안 부귀 면에서 태어난 김한섭 장인은 군 제대 후 생계를 위해 직장을 구하던 중 1973년 완주 대승마을 한지 제조공장과 인연을 맺었다. 한지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수년을 한지 제조과정을 배운 그는 어느덧 한지와 관련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며 섭렵했다. 눈썰매가 좋아서인지 남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해냈다. 만들어낸 한지 한 장의 무게를 매번 똑같이 만들어내는 실력이다.

전통적 기법으로 한지를 만드는 그의 손길이 알려지자 전국 한지관련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다고 한다.

여건이 맞는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한지업체를 옮기며 한지 제조기술에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또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치는 일에도 열중했다.

2004년까지 한지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수입한지에 밀려 생업을 접어야 했다.

“전통 한지 복원에 인생을 걸겠다”는 결심 끝에 한지와의 첫 인연을 맺은 완주를 다시 찾은 그는 대승한지마을에 정착한다.

마을사람들과 같이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수천그루를 키웠다.

현재 대승마을에는 1만2000여 평에 부지에 닥나무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완주 대승한지마을에서 만든 한지를 자연건조하는 모습이다. ⓒ프레시안(=이태영 기자)

일본에서도 알려진 그의 능숙한 손놀림...기술 전수 요청도

그는 일본과 중국을 돌며 한지 복원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가 오래전 일본 큐슈 지역의 한지공예관을 방문했을 때다. 그곳은 전통적 수작업으로 한지를 뜨고 있었다.

느린 속도의 작업을 지켜보던 그가 나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작업을 마무리하자 공예관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고 한다.

"관장이 월급의 몇 배를 줄 테니 일정기간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없냐고 묻더군요"

일본의 경우 전수자들에 3년간 국비로 지원하고 있을 정도로 전통기술 연마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지 제조 환경과는 매우 다른 부러운 게 현실이다.

"원재료인 닥나무 생산도 거의 없고 중국산과 가격차가 너무 크지만 한지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닙니다. 닥나무 재배기술을 전파하고 부족한 기계 설비를 확충한다면 유망산업이 될 수 있다고 확신 합니다"

현재 한지는 기존의 전통방식을 살리면서 새로운 기술이 속속 연구 개발되고 있어 그의 믿음은 희망적이다.

천연 염색방법, 개량된 저장방법, 표백이나 양잿물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생산방법, 타일식 한지벽지, 장판 개발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가고 있다.

‘기계식’ 한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명품 전통한지를 재현하겠다는 그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채취해 온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내 깨끗이 헹궈낸다.ⓒ프레시안(=이태영 기자)

직접 1~2년 정도 키운 닥나무 사용 “세계 제일의 품질”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는 주원료인 닥나무와 부원료인 닥풀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1~2년 정도 자란 참닥나무가 섬유질이 매우 많고 질겨 한지 만들기에 많이 이용된다.

닥풀 뿌리를 빻아서 얻은 액체를 한지를 만드는 과정에 넣으면 종이의 결합이 단단해진다.

채취해 온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내 깨끗이 헹구어 가마솥에 넣고 잿물(나무를 태운 재를 부어 거른 물)과 함께 삶는다.

“잿물은 알칼리성을 띠고 있어 닥나무의 불순물을 제거해 한지 고유의 광택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산성인 일반 종이와 달리 잿물에 삶긴 한지는 중성이 되어 잘 산화되지 않고 오랫동안 원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다고 한다.

잘 삶아서 풀어진 닥나무 반죽에 닥풀에서 얻은 액체를 넣어 잘 섞는다.

이 반죽을 미세한 구멍이 난 넓은 뜰채인 ‘발’로 여러 번 떠서 한지를 만든다.

“방향을 위아래,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반죽을 뜨면 발 위해 반죽이 격자무늬로 쌓여 서로 얽히고 질겨지죠. 이런 방식으로 통풍도 잘되고 튼튼한 한지가 만들어 집니다”


완주군 대승한지마을 한지제조소에서 김한섭 장인이 제지공 작업을 시연한 후 한지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프레시안(이태영 기자)

1만2000평에 심어진 닥나무는 마을의 소중한 자산

중국에서는 지금도 한지를 모방한 고려지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속칭 ‘짝퉁 한지’가 생길 정도였던 한지가 마을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재료로 사용되는 양잿물로 인한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이다.

주민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소요되는 오·폐수 처리시설을 갖추려는 노력 대신 한지공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풍요로운 마을이 일순간에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승마을 주민들도 전통 한지를 복원하고자 하는 열정은 대단했다. 마을 주민들과 작목반을 구성해 1만2000여평 부지에 닥나무를 심었다.

“현재 한지를 제조하는 가구는 7가구 밖에 남지 않았지만 1만2000평에 심어진 닥나무는 마을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는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김한섭 장인이 지난 10월 13일 KTX 전주역사에서 전통 한지 체험행사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외발뜨기로 한지만들기 시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태영 기자)

“전통은 조상들이 수백, 수천 년을 쌓아온 삶의 지혜가 응축된 자산”

‘도침방아’는 대승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 자산이다.

전국에 남아있는 도침방아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 훼손됐지만, 대승마을에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한지가 명성을 쌓은 비결은 바로 도침방아”라면서 “수작업이 필요한 도침방아는 종이를 질기고 얇고 광택이 나도록 하며,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쓰였습니다.”

예컨대 기계로 뽑아낸 한지를 물에 담그면 금방 풀어진다. 반면 손으로 만든 한지는 물속에서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의 손을 통해 11가지의 공정을 거치면 거칠고 투박한 닥나무가 무려 100여종에 이르는 한지로 둔갑하는 것이다.

“전통은 조상들이 수백, 수천 년을 쌓아온 삶의 지혜가 응축된 값진 자산입니다. 전통을 배우고 활용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죠”

현재 이곳에서는 하루 350~400여장의 한지를 만들어낸다.

“전통기법으로 한지를 만드는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어 아쉽기만 하죠. 누군가는 이 일을 전수해서 전통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죠”

김한섭 장인의 마지막 소원처럼 천년을 간다는 한지의 맥을 잇는 그의 손길에서 따뜻한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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