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 포항-영덕 7번 국도는 비교적 한산했다.
제법 싸늘한 가을 날씨가 차창 밖 동해바다에서 느껴졌다.
벌써 한로(寒露)가 지나고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다가오는 10월 13일 오전, 동해안 국도를 달리는 마음이 왠지 편치만은 않았다.
영덕에 다다르자 태풍‘콩레이’가 할퀴고 간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피해가 가장 크다는 강구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1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마트 안에서 나온 각종 집기들을 물로 씻어내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상인과 주민들로 인해 분주해야 할 시장 안은 적막감과 썰렁함이 교차했다.
△ 1천200여 주민들, 6일 오전 11시 생사의 기로에 서다
“한 밤중 이었으면 수 천명이 다 죽었데이~~ 아휴 말도 마라 노인네 황천길 무섭지 않다고 하는 말 다 거짓말이다. 그래도 살라꼬‘살려달라꼬’고래고함 지르고 했다 아이가”
임시로 쳐 논 막사안에서 어르신들 열에 아홉은 이구동성이었다.
지난 6일 오전 10시50분 태풍‘콩레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주민들을 습격해 1292가구, 2181명의 주민들을 삽시간에 공포에 몰아넣었다.
평균 강수량 311mm(최고 383mm) 시간당 최고 56.5mm의 폭우를 쏟아내며 강구시장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콩레이’.
결국 551명의 이재민을 만든 ‘이놈’의 위력은 불과 20여분 사이에 주민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았다.
△ 순식간에 물 불어나 수영으로 겨우 탈출...대문 붙들고 버티기도
강구시장 인근 오포리는 60세 이상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송관호(55)씨는 밝혔다.
송씨는 자칫 이번 태풍으로 어머니를 잃을 뻔 했다.
송씨는 “6일 오전 11시 저희 집에 물이 들이 닥치자 어머니 (임기분. 80)가 허둥지둥 집 밖으로 나오려다 물살이 대문을 막아서는 바람에 자칫 큰일을 당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 송씨 어머니는 대문 맨 위쪽을 붙잡고 메달린 채 살려달라고 20분 가량을 소리치며 버티셨다고 한다.
마침 소리를 듣고 헤엄쳐 달려온 청년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송 씨 어머니는 당시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로 오포리를 떠나 포항 ‘딸내’ 집에서 심리 치료중이라고 덧붙였다.
콩레이의 기습은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20대 젊은이들에게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배정은(29. 여)씨는 “사람이 이렇게도 죽는구나”며 아찔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10시 50분 까지만 해도 마당에 무릎까지 찼던 물이 불과 5분 만에 갑자기 2m 높이의 물이 온 집안을 덮쳤다고 했다.
골목 안까지 밀고 온 물살이 그녀의 집 담장을 무너뜨리며 집안으로 들이 닥쳤기 때문이다.
정은씨는 “평소 수영을 할 줄 안다고 자신했지만 갑자기 물이 들이닥치자 당황한 나머지 머리가 하얘지고 그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수영을 해서 집 밖으로 나왔지만 비 때문에 시야는 흐렸고 앞 뒤로 가재도구와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는 등 당시상황은 공포 그 차체였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밝혔다.
△ 전 재산 다 잃고 망연자실...앞으로 살길 막막
생면부지는 했지만 전 재산을 콩레이에게 다 뺐겨버린 김춘영(58.여)씨는 일주일 째 습기가 찬 방에서 눈물로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래고기 도매업을 했던 그녀는 이번 태풍에 전 재산을 다 날렸다고 했다.
김씨는 “창고에 보관했던 고래고기(시가 3천만원)가 이번태풍에 유실됐다. 큰 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전부다. 막막하다. 정말이지 가혹한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건강장수원을 개업한 지 1년 남짓한 양진태(38)씨 또한 망연자실한 심경을 밝혔다.
2년 전 울산에서 이곳으로 이사해 둥지를 튼 양씨는 “그날의 악몽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그나마 건진 제탕기를 청소하며 축 늘어진 모습을 보였다.
양씨는 특히 이번 폭우피해 때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폭우가 발생하자 영덕군에 전화를 걸어 인근 배수펌프장 가동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영덕군은 ‘정상가동중이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했다.
또 119 소방서에는 살수차량 지원과 구조요청을 하기도 했다.
△배수펌프장만 가동됐더라면...피해 주민들 대다수 아쉬움 토로
100억원을 들여 설치한 배수펌프장 가동여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현재까지 배수펌프장안에는 물이 차 있었다.
취재중 일부 주민들은 “배수펌프장 설치하는데 100억원 넘은 큰 돈을 들였다는데 당시 가동이 됐는지 의문이다” 며 “태풍이나 큰 비가 왔을 때 사용되어야할 배수펌프장이 결과적으로 무용지물이 됐다”고 했다.
△영덕경제의 심장, 대게타운도 직격탄...주말인데 손님 발길 뚝
콩레이는 주민들에게 상처 뿐 아니라 ‘영덕의 심장부’도 찔렀다.
강구항 영덕 대게 타운은 4만 영덕군민의 자부심과 경제의 중심지역이다.
200여 상가들은 연 80~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말인 대게타운은 너무 한산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것도 점심시간 피크타임인 12시에 말이다.
물론 대게철이 아닐지라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게좋은날’ 식당 김경숙 사장은 “태풍영향으로 손님이 확 줄어든 게 사실이다” 며 “그래도 우린 다리 건너 강구시장 주민들 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대명대게수산 김인호(55) 대표는 “지금 이곳매출은 작년 대비 70%가까이 떨어진 상황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태풍마저 들이닥쳐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강구대게상가연합회 유진수(56)회장은 “작년에는 그나마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장사가 잘 된 편이지만 올 해 매출은 급격히 떨어진 게 사실”이라며 “이번 태풍 영향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예약취소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수재민들,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세상의 무관심이 더 무섭다’
대다수 피해주민들은 정부와 각계각층의 무관심이 더 서럽고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최기욱(가명 63)씨는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도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이다. 수해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타도시 재난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며 전 국민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취재후기...영덕의 눈물 닦아줄 사람 절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허탈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약 30여 명을 만나 그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었지만 지면 관계상 그들의 입장을 일일이 전하지 못함을 이해구한다.
그리고...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 깊숙이 파고들었다.
누구 한 사람 눈물겹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눈물겨워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지금 영덕에는 수재민들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절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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