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인상 이후 동결된 기준금리(1.5%)가 1년만에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4일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금융 불균형'은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최근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쓰는 용어다. '금융불균형 누증'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인한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시장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등을 뜻하는 것이다. 금통위 내에서는 금융 불균형의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해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날 이 총재가 산업계와 경제연구소 대표자들이 모인 경제동향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제 10월18일과 11월 두 차례 남은 올해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무총리와 국토부 장관의 금리 인상 압박 발언 이어져
하지만 한국은행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결정을 내려도 "금리 인상의 때를 놓쳤다"는 비판과 한은의 독립성이 상실됐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노골적으로 "금리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며 한국은행을 압박한 뒤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이낙연 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금리 인상 문제에 대해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지난 정부에서 저금리 기조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면서도 "금리 인하가 '빚내서 집 사자'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고 가계부채 증가를 가져온 역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라고도 말해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김현미 장관도 지난 2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정부 이후 지속한 저금리에 전혀 변화가 있지 않은 것이 유동성 과잉의 근본적 원인"이라면서 "금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유동성 정상화가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강조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과잉유동성을 줄이라고 압박한 것으로 해석됐다.
금리 정책은 선제적으로 단행되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타이밍을 놓친 금리 인상은 '죽도 밥도 안되는 최악의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초저금리 장기화에 따라 순식간에 1000조 원으로 불어난 시중의 유동자금이 정부의 강력한 각종 부동산 안정정책들을 무력화시켜온 근본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저금리에도 고용시장은 '쇼크' 수준의 지표 악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기준금리는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세차례 0.25%포인트씩 인상되면서 최고 2.25%로 높아져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0.75%포인트에 달한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 스스로 내년에도 세차례 금리 인상을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미 기준금리 차이에 따른 외국자본 유출 리스크까지 갈수록 커지고 있다.(☞관련 기사:미국발 '금리 쇼크', 중산층과 서민 덮쳐온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정부가 원하지 않는 부동산 시장의 충격과 정부가 바라는 고용지표 개선은 가시화되지 않는 낭패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금리 인상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15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고 중산층과 서민부터 빚의 고통을 가중시켜 정치 지지기반을 허물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주열 총재는 한국은행 역사상 1970년대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연임이 결정된 최초의 사례다. 그의 연임 배경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이 주도하는 경제팀의 적극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저금리로 거품 경제를 만들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처럼 "거품 제조 능력에 대한 기대로 연임의 영광을 누렸으나 정권의 버림을 받은 한은 총재"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