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노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한국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충격이었다. 시커먼 굴뚝에 갇혀 청소를 하는 여린 노동자들의 참상에서부터 노동운동. 주경기장을 지은 노동자들까지. 대부분의 언론들은 개막식 공연의 취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으레 그렇듯이 의도적으로 왜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영국, 나아가 세계 역사에 기여한 노동계급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존중의 시선이 개막식에서뿐 아니라 런던 올림픽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었다는 것이다. 런던 올림픽은 생활임금(Living wage) 올림픽이었다.
런던 시는 생활임금 도시이다. 런던시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런던 시민들에게는 2012년 기준 시간당 8.3 파운드(한화 약 1만4970원) 이상의 생활임금이 지급된다. 최저임금 6.08 파운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생활임금은 매년 런던 시장이 공표한다. 2012년 런던 시장선거에서도 생활임금의 인상과 적용 범위가 중요한 공약 중 하나였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미 2007년부터 런던 시민들과 생활임금 적용에 합의했고, 조직위원회와 계약을 맺은 1000여 개 이상의 민간업체가 생활임금의 적용을 받았다. 준비 과정 중에 노조, 시민단체 측과 생활임금 준수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논쟁이 오가기도 했지만,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직간접적으로 조직위원회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수준과 성별, 국적, 거주지 등에 대한 상세한 모니터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우리 언론들은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노동자와 노동자의 현실을 두고 왈가왈부 논란을 벌였으나, 올림픽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적정 임금에는 둔감했다.
영국에서의 생활임금 캠페인은 2001년부터 본격화되었고 노동자들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요구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최근에는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져 런던과 같은 자치단체 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생활임금 선언을 하기도 하고, 보수당 출신 총리인 데이빗 카메론이 "이제 현실화할 때가 되었다(An idea whose time has come)"고 발언할 정도의 정책적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앞서 19세기 말부터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이 일었으니 생활임금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당시 생활임금은 "가족임금(a family wage)", 즉 생산현장의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하는데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임금액으로 정의되었으며 그 개념은 현재까지 큰 변화가 없다. 미국의 생활임금 운동은 지방정부와 상업상의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사업체의 사용자가 연방 최저임금 보다 약 50%높은 시간당 최저 7.70달러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생활임금 조례 (living wage ordinance)'에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장 쿠르트 쉬모케(Kurt Schmoke)가 1994년 12월 서명함으로써 근대적인 형태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 전역에서 백 수십여 개의 시의회 및 카운티(county) 위원회가 유사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생활임금조례를 통과시켰다.
생활임금 캠페인은 각각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내용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조례들은 시 혹은 주정부와의 거래관계에 있는 사업체들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연방 혹은 주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선 (minimum wage floor)을 훨씬 상회하는 임금을 지급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생활임금 캠페인은 다양한 조직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저소득 공동체 조직화 운동(low-income community organization)을 이끌었던 ACORN을 비롯해서 서비스 노동조합과 공공노조가 핵심적인 주체이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을 현실화시키는 연대운동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목표는 매우 다양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유지가 중요한 미국의 지방 및 시정부의 공공노조(AFSCME)들은 생활임금 운동을 정부 일자리(government jobs)의 아웃소싱을 저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미국 서비스노동조합(SEIU)이나 호텔및요식업노조(HERE)와 같은 조직들은 생활임금 운동을 정부부문 및 서비스업 일반에 종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 및 그 주변 노동력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기 위한 중요한 기회로 간주하고 참여했다. 시민운동단체나 공동체 그룹들은 지역 주민들이 직면한 극단적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을 알리기 위한 목표로 생활임금 운동에 참여했다. 종교 그룹들의 경우는 도덕적인 이유, 즉 '공정임금(just wages)'등을 통한 사회의 윤리적 질서회복 등을 목표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대안 정당의 활동가들은 캠페인을 통해서 대안적 경제정책들을 공론화하고 토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나 ACORN과 같은 중요한 운동조직들이 '생활임금' 캠페인을 통해 사회운동조직들 간의 진보적 연대와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조직력 및 정치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장기침체를 경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노동조합들은 공동체 혹은 지역의 현안을 지역공동체와 공유하고 운동을 조직하는 등의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예상보다 훨씬 급격한 쇠퇴를 거듭해 왔으며, 아울러 여러 가지 환경의 제약에 노출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부정적 조건들은 노동운동의 인식 전환을 유도해 새로운 형태의 노동조합 운동을 모색하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생활임금 캠페인(living wage campaign)이었다. 한마디로 생활임금 캠페인은 시민사회, 지방 정부, 정당과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연대임금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생활임금캠페인의 닻이 올랐다. 노원구와 성북구에서 생활임금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생활임금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한국의 적용가능성>이란 제목으로 토론회도 열렸는데, 이 토론회에서 필자는 '공공기관이 자신과 용역·파견, 위탁·조달 계약관계에 있는 민간업체로 하여금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생활임금운동'을 소득의 양극화, 저임금 노동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제안하였다. 아무리 19세기말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운동이라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생활임금이라는 개념부터 매우 낯설다. 무엇보다 아직 최저임금인상 등 최저임금제도 자체의 개선 가능성이 시급하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생활임금이 지방 정부의 조례로서 법률적 효력을 갖게 될 경우 미조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목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기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경제적 유인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으며, 생활임금 운동이 지방정부의 고용관계를 넘어서, 민간부문의 전역에까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ripple effects)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 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저임금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최저임금제도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적정한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다. 최저임금제가 저임금노동과 소득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전한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생활임금캠페인은 보완적 전략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노동-시민 사회 간 연대를 실현하는 가교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가 노원구과 성북구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된 생활임금도입 캠페인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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