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부채〉. 소설가 이병주의 단편입니다. 어쩌다 길에서 주은 작은 부채 하나에 깃들어 있는 사연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결국 알고 보니, 그 작은 부채에는 장기수로 복역하다 죽은 여인과 그녀의 사랑하는 애인이자 그 또한 장기수로 사망한 사나이의 사연이 얽혀 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냥 지나치고 말면 그뿐일 듯한 부채 하나에 기구한 인생과 우여곡절의 역사가 아프게 배어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소설은 그 첫 대목에서, 한 줌에 쥘만한 부채를 우연히 갖게 된 젊은이가 왠지 며칠간이나 그 부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부채가 재소자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그 부채는 워낙 작은데다가 나비와 꽃 그림이 박힌 아주 작은 세공까지 되어 있는 일종의 예술적 가치마저 지니고 있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이는 그 부채를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 끝에, 한글 자음 석자가 이름처럼 두 쌍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단서로 재소자 가운데 그 부채의 주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이미 그 주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복역한 끝에 바로 며칠 전 사망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한글 자음의 다른 석자는 역시 상상했던 대로 쥘부채의 주인이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 약자였고, 그 사나이도 고인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소설은 이 두 남녀가 해방 공간에서 함께 좌익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장기수로 지내던 중에 서로의 소식도 모르는 채 각기 운명을 달리해버리고 말았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나비와 꽃은 서로 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하면 죽은 후 각기 남자는 나비로, 여자는 꽃으로 환생하여 만나자는 애절한 염원을 담은 장식이었던 셈이었습니다. 이승에서 몸이 만나지 못하면 영혼으로라도 인연을 맺어 생명을 나누려는 기원이 그 작디작은 쥘부채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3자의 눈으로는 그다지 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이는 물건에 바로 그 타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슬픔이나 추억, 또는 기쁨과 기원이 담겨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당사자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힘을 뿜어내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또 때로는 그것이 오래 전 헤어져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 있는 결코 작지 않은 뜻을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주시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간적 존재일 것입니다.
재소자가 만든 쥘부채 하나에서 우리 역사의 비극과 사랑하는 이들이 결국 피하지 못했던 운명의 기로를 마침내 발견해낸 이의 눈길은 사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인간적 덕목입니다. 하물며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요구되고 필요한 영혼의 능력입니다.
미미하다고 작은 것을 스쳐지나가지 않는 따뜻한 마음씨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길을 모색하려는 자세는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진실로, 규모 있으면서도 섬세하고 정겨운 인간적 지도자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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