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1시,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 포항시내버스 차고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고있었다.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노조 사무실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가 들어섰다.
동료로 보인 한 사람이 "병진아(가명) 니 향수 뿌렸나"고 웃으며 묻자 "향수는 무슨...XX 속 터져가 한잔 묵았뿌랬다"고 답했다.
옆에 있던 또다른 동료가 덩달아 맞장구 친다.
"요즘향수는 '이슬(소주)'이 대센긴라(최고좋다)"
순간 숨을 죽이며 날씨만큼 잔뜩 찌푸리고 있던 50여명의 입가에 웃음기가 엿보였다.
2시 30분,개표가 시작되자 또다시 긴장감이 되풀이 됐다.
15분 후 환호성과 한숨이 교차했다.
투표결과는 파업대신 정상운행(68.6%)이었다.
박수와 함께 서로 악수하며 그동안의 격려인사가 오고갔다.
지난 5월 15일 부터 4개월 동안 24차례나 협의한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주52시간 단축근무제를 시행하더라도 기존 평균임금(300만원)에 가까운 295만원을 받는다는 노사합의였다.
당초 사측은 근로시간이 줄었으니 더 줄수 없다며 269만원을 제시했다.
병진씨가 슬그머니 사무실 입구로 나가더니 담배를 입에물며 한숨을 내쉰다.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실 난 파업을 원했다"며 "이번에 우리가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정책을 원망했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해 더 많이 벌고싶은데 정부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바람에 화가났다는 주장이었다.
이 회사 노동조합 여태현(57) 조합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발표,시행된 이후 전국에서 임금협상을 놓고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한 첫 사례인 만큼 사측과 협상할때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이번사태를 겪으며 근로시간 단축이 결코 최선이 아니라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이번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을 할까봐서다.
정부는 올 해 3월 근로자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종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관련법규인 근로기준법개정안을 확정,발표했다.
저녁이 있는 삶과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이 개정안은 올해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하루 최대 8시간에 휴일근무를 포함한 연장근로를 총 12시간까지만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관계부처는 이를 지키지않는 사업장에 대한 조사단속을 올해 말까지 유보해 놓은 상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포항철강단지 400여 기업 근로자들의 내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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