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회의원 특권과 특혜는 정말 불필요한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회의원 특권과 특혜는 정말 불필요한가?

[시민정치시평]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특권

19대 총선이 끝나고서부터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한 논의가 거세다. 개원도 하기 전에 의원 특권을 다루는 언론보도들이 연이어 등장하더니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도 이에 반응해 국회의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여러 방안들을 내놓기도 했다. 아마도 국민들 사이에서 국회의원의 권한 축소만큼 여론이 일치되는 사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언론도 잊을만하면 만지작거리는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분명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족에 기인한 것이고 정치권의 책임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무조건적인 정치혐오와 결합하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기대하기 힘들다.

원칙부터 이야기해보자. 의회의 역할은 무엇이고, 의원들은 왜 특권을 갖는가? 우리가 아무리 국회를 폄하하고, 국회폭력을 비난할지라도 한 나라의 "의회"는 그 국가를 구성하는 인민의 총체적 의지가 결집된 곳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나라라면 전쟁 상황에서도 감히 의회를 무력화하거나 선거를 거부하지 못한다. 급진적 민주주의의 모든 논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의회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늘날 의회 없는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 따라서 의회를 없애거나 약화시키고자 하는 상당히 많은 시도가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자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된다.

ⓒ뉴시스
민주주의가 불편한 자들은 누구일까? 이미 반세기 전 샤츠슈나이더(E.E. Schattschneider)라는 학자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분석하며 간파했듯이 그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필요가 없고 갈등을 사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 강자들이며, 다수의 통치를 거부하는 특권 소수층이다. 정치·경제·사회적 강자들에 맞서 인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들에게 여러 특권을 부여한다. 예를 들면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불체포특권(44조)과 면책특권(45조)을 주었다. 이 같은 제도가 없다면 의원들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기검열에 시달릴 것이고 과감한 문제제기나 고발은 불가능할 것이다. 강자의 권력은 의회의 견제와 감시 시도 자체를 아주 쉽게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과 재벌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이 요원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이 특권층의 반정치적 시도는 정치개혁을 원하는 민주적 세력들의 목소리 속에 섞여 들어가 장기적으로 다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새누리당이 의원들의 권리를 스스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포퓰리즘이기 전에 반민주적일 수 있다.

의원들에 대한 보호 장치뿐 아니라 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과 혜택을 제도화하였다. 현대 의회의 주요 기능이 입법에서 권력 감시로 변화하고 있지만 입법 전문성과 정책 생산 능력이 없는 의회는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능력도 충분히 갖기 어렵다. 의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움직이는 행정부와 재벌 같은 사회적 강자들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필적하는 정책 이해 능력이 있어야 하며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규모와 전문성이 있어야한다. 따라서 의회 또한 조직과 자원이 필요하며 의원들 뿐 아니라 능력을 겸비한 수많은 인재들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의회에 입법조사처와 같은 기구를 설치하거나 의원보좌진을 고용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이유이다. 또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재력이 있는 사람만 국회의원이 되고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런 이들로 구성된 의회가 과연 누구를 대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원칙적으로 의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민주주의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소수의 특권층은 민주주의가 인민의 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게 만들 이유와 수단이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민주주의와 의회를 인민 스스로 불신하게 만들고 이런 불신과 무관심 속에서 의회 또한 유권자를 선거 때만 주인 취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대표들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결정이다. 방탄국회 때문에 부패한 의원을 징벌하지 못하는 문제에도 분노해야하지만,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이 없어 어떤 의원도 유권자들을 위해 과감한 고발과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것이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좌관과 입법보조 기능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워 수 백 조원을 쓰는 정부 예산을 제대로 검토하고 감시할 수 없다면 그것 역시 지독히 어리석은 일이다.

국회의원의 특권과 특혜는 정말 불공정하고 불필요한 특권들인가? 국회는 정말 돈을 방탕하게 낭비하고 있는가?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대개 보수언론들이다. 보수언론이 사회적 특권층으로 간주되는 국회의원의 권한을 제한하자고 하니 내심 대의제 민주주의가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고 믿는 진보언론이나 시민단체도 맞장구를 친다. 이들의 비판에는 우리 정치인들이 부끄러워하며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러나 국회의 제도적 힘까지 약화 시켜야 할 만큼 우리 국회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선 국회 전체의 씀씀이를 살펴보자. 2012년 전체 정부 세출예산은 223조 2861억 원(일반회계)이다. 그 중 국회의 세출예산은 5051억 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3% 수준이다. 삼권분립의 한 기관인 사법부의 대법원 예산이 1조 1561억 원이며 (헌법재판소 제외), 행정부 내의 국무총리실이 4885억 원, 국가정보원이 4690억 원, 경찰청이 7조 9326억 원이다. 심지어 통계청 예산이 2355억이나 되고 지방자치체인 안양시 예산이 6167억 원이다. 전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 기구가 일개 지방시만도 못한 예산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단편적인 비유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예산 비중은 우리 국회의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개개의 국회의원의 사례도 짚어보자. 최근 일부 신문에서 의원 보좌진의 존재 자체를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특혜로 간주하는 기사를 실었다. 보좌진이 아홉 배나 늘었다고 기사를 쓴 경제신문도 있었는데, 그 아홉 배의 기준은 보좌진이 한 명이었던 1948년 제헌의회(!) 시절이었다. 현재 국회의원 보좌진은 인턴 두 명을 포함해 아홉 명이다. 이 언론은 그 사이 우리 경제와 사회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특히 행정부가 얼마나 거대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한 상임위에 의원이 20명이라 해도 인턴까지 포함한 보좌진이 180명이다. 이들이 상대하는 행정부처의 공무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상상해 보라. 게다가 의원들은 두 개의 상임위에 소속되어 있고 보좌진들은 지역구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와 활동 지원비, 보좌진의 인건비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지만, 그 기준이 되는 행정부 관료들의 봉급과 지원비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현재 국회의원 보좌관들 중에는 박사급이나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의 급여를 국회의원의 개인 비서에 대한 사적인 혜택처럼 간주하는 것은 무지한 베껴 쓰기 언론이거나 의도적인 반정치 선동에 가깝다. 물론 출근도 안하는 친인척을 고용한 의원들이 있던 것도 사실이나, 이런 의원들은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고 재선될 가능성도 낮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유권자들이 능력에 따라 심판할 문제다. 서구 국가에 비해 보좌진 수가 많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회와 행정부가 융합되어 견제 기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내각제 국가와 비교하면 보좌진 수가 많긴 하나,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의회의 견제 역할 때문에 개별 혹은 국회 차원에서 의원 보좌 기능이 막강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밖에도 언론은 국회의원의 혜택과 특권으로 직무관련 사망 시 1년분 수당 지급, 상해 시 치료비 보상, 공무 시 열차/비행기/선박 무료 이용, 의원도서관의 평생열람증 지급, 국회의 기자회견장, 회의장, 강당 사용권, 국회 내 어린이집 사용 등을 예로 들었다. 국회의원의 업무량과 필요한 지원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주장은 거의 없이 일반적 복지혜택 혹은 업무 관련 사항까지 국회의원의 혜택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비난 자체를 목적으로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재 의원들의 특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의원 겸직 등의 문제를 제외하면 지나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의원들의 윤리에 맡겨야 하고 국회 내부 규율에 관한 제도를 보완해야 할 문제를 모두 특혜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의회를 지나치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실 국회의원의 진짜 권력은 입법, 예산, 감사에 관련한 법적인 권한과 그들의 정치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이런 부차적인 특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조하는 이런 권한들을 제한하기 시작하면 정부와 사회의 거대 권력에 대한 국회의 실질적 권한도 질적으로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물론 의회에 예산이 많이 배정되고, 의원의 권한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의회는 아니다. 하지만 의회가 강한 나라치고 민주주의가 쇠퇴하거나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나라는 없다. 약한 의회가 누구를 위해 봉사할지는 자명하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고, 말을 잘 듣고 심지어 같은 이익을 공유하는 의회처럼 좋은 게 없다. 국민들이 의회를 비난하면 비난할수록 좋다. 정치가 약자들, 갖지 못한 사람들, 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면 그들에게는 완벽한 세상이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국민의 무관심과 혐오는 국민이 선택한 대표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벌이나 거대 보수 언론 같은 특권 소수세력이 의원들을 회유하거나 조정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고가 특권에 물들고 부패한 국회의원들을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그 가진 특권에 걸맞은 책임을 엄중히 져야할 것이며 이를 강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차갑고 날카로운 심판이다. 그 심판이 살아 있을 때 국회의원이라는 국민 대표가 가진 특권은 국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힘이 될 것이다. 그 특권은 인민에 의한, 인민의, 인민을 위한 특권이다. 그 특권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회와 더 많은 의정 활동 지원,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참여와 관심이지 불신과 혐오를 통한 의회의 무장해제는 결코 아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