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리라는 전망이 잇따른다. 모건스탠리가 6일(현지 시간) 이런 전망에 동참하면서,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주식 가격이 하락했다. 반도체 쏠림 현상이 극심한 한국 경제 구조에서 이는 위험 신호다.
반도체 빼면 적자
올해 상반기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는 약 325억 달러(약 36조7000억 원)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반도체 무역수지 흑자는 그보다 많은 약 408억 달러(약 46조800억 원)였다. 이는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만으로 무역수지를 계산하면, '적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수(약 620억 달러, 약 70조290억 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5% 늘었다. 그 때문에 전체 무역수지까지 좋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반도체 효과'는 모든 경제 지표에서 나타난다. 코스피 상장사 536곳(금융업, 분할합병 기업 등 96곳 제외)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 총액은 63조4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22조7000억 원으로 35.9%다. SK하이닉스는 7조4000억원으로 11.8%다. 그리고 올해 2분기 들어 삼성전자 순이익에서 반도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로 늘었다. 1분기엔 약 74%였다.
요컨대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졌고, 삼성전자 안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계속 늘었다. 반면, 다른 산업은 매출이 제자리걸음 혹은 후퇴했다. 그런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는 삐쩍 마른 알몸이 드러난다. 반도체 이후를 준비하는 산업정책, 특정 산업에 너무 기대는 구조에 대한 대안 등이 모두 없는 상태여서, 불안한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가격 하락 신호 잇따라
7일자 외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숀 킴 애널리스트는 "PC와 모바일, 데이터센터 수요가 최근 2주간 감소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재고가 쌓이고 있다"며 "3분기엔 메모리 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반도체 시장 조사기관 D램 익스체인지 역시 "내년 D램 가격은 올해 대비 15∼25%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반도체 업계 내부자의 증언도 나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데이비드 진스너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6일 "3분기 낸드 반도체 칩 가격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 영향으로 미국 반도체 업체 주식 가격이 떨어졌고, 코스피 역시 영향을 받았다. 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 가격은 전날보다 각각 2.60%, 3.68%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주식을 내다 팔았다.
반도체 수요 둘러싼 논란
물론, 반도체 가격 전망은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예컨대 모건스탠리는 1년 전부터 줄곧 반도체 경기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했었다. 이런 전망은 맞지 않았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업이 신규 데이터 센터 건립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반도체 가격 하락 주장을 반박한다.
하지만 그동안 반도체 수요를 잡아당겼던 요소들이 시들어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요컨대 올해 초 세계적으로 폭발했던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이제 꺼진 상태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 채굴을 위한 하드웨어 수요도 감소했다. 반도체 수요 하락의 한 원인이다. 또 새로운 하드웨어 수요, 혹은 컴퓨터 운영체제(OS) 교체 수요도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반도체 수요와 맞물린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의 주식 가격이 하락세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극소수 기업이 이끄는 경제, 반도체 가격 하락에 취약한 구조
문제는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이 성장을 견인하는 한국 경제 구조다. 이를 뒤집으면, 극소수 상위 기업이 피해를 보면, 전체 산업 지표 역시 크게 악화된다는 뜻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 가운데 소득금액 기준 하위 40%는 적자였다. 총 80조1548억 원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상위 0.1%(소득금액 기준) 기업 695곳의 소득금액 총액은 179조2000억 원이었는데, 이는 적자를 보지 않은 상위 60% 기업 41만7264곳의 소득금액을 다 합한 330조338억 원의 54.30%였다. 상위 0.1% 기업이 한국 기업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나빠질 경우, 기업 전체 실적 악화 및 법인세수 감소 등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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