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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도 됐으니 나이 값을 하는 게 좋은데…"

김민웅의 세상읽기 〈180〉

우리말의 뿌리를 캐내는 일에 평생을 바친 이남덕 선생은 "늙다"의 어원을 "느리다", 그리고 "너르다"에서 찾습니다. "느리다"는 늙은 사람들의 행동과 관련되어 있고, "너르다"는 그 마음의 크기에 연결되어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말을 하나로 합쳐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움직임이 "여유롭고 유연하며 관대하다"라는 뜻으로 정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가면 아무래도 젊은 시절만큼 재빠르기 힘들고 순발력도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 속도를 넘는 깊은 경륜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멋진 일입니다. 그러나 늙어가면서 만사에 유연성이 떨어지고 생각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졸렬해지면 그것은 추해지는 것이지 나이가 들어가는 의미를 똑바로 자각하는 자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사를 두루두루 살피고, 염려할 바를 미리 내다보며 그러나 쉽게 좌절하지 않도록 주변을 다독거리는 힘이 있는 사람이 제대로 나이를 먹어가는 존재일 것입니다. 게다가 당장에 터져 나오는 자기 성질대로 일을 처리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숨쉬어 갈 데를 알고, 다소 느린 듯하지만, 결국에는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혜 있는 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늙은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늙는다는 것이 부정적이고 폄하되는 경향이 있지만, 본래 이 "늙음"이란 존경의 대상이었고 지혜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고 가볍기 쉬운 젊음이 배우고 익혀야 할 바를 일깨우는 능력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늙음이 생기가 부족한 무기력함과 동일시된다면 모르겠으나, "여유와 관대함 그리고 깊은 성찰"의 덕목을 일컫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소중한 인간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낫살이나 먹은 자가" 하는 것도 있고, "나이 값을 좀 하지" 라는 말도 있습니다. 모두 세월이 그 몸과 영혼에 쌓여가는 가치에 대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만 까먹고 마는 것과는 다른, 인간의 질적 성숙의 변화가 그 안에 담겨 있기를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그 육체적 나이가 젊은가 늙은가, 보다는 그 정신적 나이를 주목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이루어져 가야 할 일들이 가벼운 사고나 젊은 치기, 또는 단순한 열정으로 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생기 넘치는 젊은 육체에 지혜로운 노년에 못지않은 깊은 생각을 가진 인물이 지도자가 될 때 그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는 확실한 중심을 잡고 난관을 헤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대체로 실망과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 가운데 주요한 요인 하나는, 개혁과 참여의 원칙을 그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비판과 함께 경륜을 갖춘 깊이 있는 원로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부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실세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무언가 날이 서 있고 냉정하며 상호존중을 통한 대화보다는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줄 뿐, 다사로움과 여유, 때로 조금 결정이 느려도 너그러움과 깊이 등을 기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의 질타는 이에 대해 또다시 구구한 변명을 하거나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닌 듯싶습니다.

사실과는 다른 그저 근거 없는 인상기 아니냐고 반박하는 데에 먼저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너른 품을 가져야할 지도자의 자격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혹여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지는 순간이라도, 한발 물러서서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은 위신이 깍이는 굴욕이나 모멸적인 후퇴가 아니라 겸허한 성숙의 징조 내지는 진정한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자신의 고유권한이라고 해도 그에 문제제기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면, 그야말로 그런 권력은 이미 독선의 유혹에 빠진 셈입니다. 군대에서조차도 부당하게 여겨지는 명령에 대해 항변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역시 나이 값을 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새해가 되어 나이도 하나 더 먹게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그간 탈권위를 내세웠던 권력이 "가장 권위주의적"으로 일을 처리한 경우가 아닌가 싶어 후폭풍이 그리 간단치 않을 성 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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