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사태 당시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다. 그때만 해도 구호에 불과했던 이 문구가 사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년이 지난 지금 쌍용자동차에 관련된 노동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 30명이 사망했다. 확인된 죽음만 그러할 뿐, 숨겨진 죽음도 상당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병사까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죽음들이 그간 차곡차곡 쌓여갔다. 물론, 이러한 죽음을 막기 위한 실태조사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왜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지를 살펴보고 후속대책을 고민하는 조사였다.
그렇게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와 복직자의 경험과 건강 관련, 연구와 조사는 몇 차례 발표됐다. 하지만 해고노동자 가족에 대한 경험과 건강 관련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었다. 30명의 사망자 중 일부는 해고자 배우자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심리치유센터 와락 공동협력사업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의 배우자를 실태조사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번 연구는 고려대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쌍용차 해고자와 복직자, 그리고 그 배우자들의 건강에 대해 지난 5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는 해고노동자 아내 26명, 복직자 아내 35명, 해고노동자 86명, 복직자 33명이 4월22일부터 6월 29일까지 참여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해고자 배우자 48% '자살 생각해봤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예상한 바대로 해고자 배우자의 건강 및 심리상태는 복직자 배우자보다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귀하의 건강상태는 전반적으로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해고자 배우자는 '건강이 좋다'고 57.7%(15명)가 응답했고, '건강이 나쁘다'는 답변은 42.3%(11명)였다. 반면, 복직자 배우자는 82.9%(29명)가 건강이 좋다고 응답했고, 단 17.15%(6명)만이 건강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지난 1주일간 우울증상을 묻는 말에는 해고자 배우자의 17.4%(4명)만이 우울증상이 없다고 응답했고, 무려 82.6%(19명)가 우울증상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복직자 배우자의 경우, 48.4%(15명)만이 우울증상이 있다고 응답했고, 51.6%(16명)가 우울증이 없다고 답했다. 우울증증상 관련 설문문항은 우울 수준을 측정하는 CES-D 20개 문항을 이용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살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라는 설문에서는 해고자 부인의 경우 48%(12명)가 한 번 이상 해봤다고 응답했고, 52%(13명)는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반면, 복직자 배우자는 20.6%(7명)만이 자살 생각을 해봤고 79.4%(27명)는 없었다고 응답했다.
'2018년 현재의 삶이 어느 정도로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해고자 배우자의 60%(15명)가 불안정하다고 답했고, 40%(10명)는 안정적이라고 답했다. 복직자 배우자의 경우는 21.2%(7명)만이 불안정하다고 응답한 반면, 78.8%(26명)는 안정적이라고 답변했다.
해고자 배우자 70% '남편 해고로 세상으로부터 소외감 느낀다'
주목할 점은 남편이 해고된 이후 배우자들은 정신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음이 이번 조사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남편의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는 질문에 해고자 배우자의 70.8%(17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한 '(남편이)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문항에는 75%(18명)가, '(남편이) 해고당한 것이 남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58.3%, 14명), '(남편의) 해고로 인해 내가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거나 행동하게 될까 봐 전처럼 사람들과 잘 사귀지 않는다'(45.8%, 11명),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45.8%, 11명) 등으로 응답했다.
해고자 배우자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해고자 배우자의 45.8%(11명)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25%(6명)가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답했다.
반면, 복직자 배우자의 경우 31.3%(10명)가 '매우 조심해야 한다', 25%(8명)는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응답했다.
해고자 배우자는 복직자 배우자보다 남편과의 관계도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배우자 관계 만족도 관련해서 해고자 배우자의 66.7%(16명)가 만족한다, 33.3%(8명)는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복직자 배우자의 81.3%(26명)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이처럼 해고자 배우자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를 두고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 '폭력적 해고 과정', '손배가압류'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으로는 한국 사회가 해고노동자를 위한, 특히 재취업을 위한 충분한 정책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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