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목포에서 92km 떨어진 곳으로 우리나라 행정구역상 최서남단 해역에 있는 섬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예전에는 많은 선비가 유배 생활을 하던 섬이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 선생이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15년 동안 했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다고 흑산(黑山)도라 불리는 이 섬은 면적이 19.7㎢, 해안선 길이가 41.8㎞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해안을 따라 24km의 도로가 닦여져 있어 차로 섬 전역을 돌 수 있다.
그런 이 섬이 최근 공항 건설로 시끄럽다. 정확히는 소형공항 건설이다. 흑산도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산간지역을 활주로가 남북으로 이분화하는 건설 사업이다. 50인승 중소형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만드는 이 사업은 총 5년의 공사 기간에 1833억 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정된다.
흑산도 공항 건설 사업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을 검토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환경부는 2010년, 그리고 2011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 국립공원 내 공항을, 즉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흑산도 내에 소형 공항을 건설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그러나 흑산도 공항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호남을 근거지로 하는 민주평화당은 공항 건설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평화당과 같은 뿌리(국민의당 계열) 출신인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제명을 거부하고 있어 민주평화당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고 국내 가장 권위 있는 환경법 전문가이기도 한 이 의원은 흑산도 공항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지역 주민들도 의견이 갈린다. '개발'을 중시하는 주민들과 '환경'을 중시하는 주민들이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과연 흑산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찬성 측 "흑산도 공항, 경제적 파급효과 크다"
건설을 찬성하는 쪽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흑산도라는 섬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공항이 건설되면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흑산도는 섬인지라 여기에 가는 유일한 방법은 목포까지 차로 이동한 뒤, 여객선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들 동선에 걸리는 시간은 수도권 기준으로 6~7시간 정도다.
또한,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여객선은 하루 4회 왕복 운항하지만, 기상 악화로 번번이 결항하고, 오후 4시 이후에는 흑산도에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이 건설될 경우, 접근성이 높아지리라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파급효과다. 공항이 건설될 경우, 물동량 증가로 목포 및 전남 지역의 관광산업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공항을 건설하는 5년이라는 기간에 공항건설을 위한 인력과 장비 등이 모두 목포를 통해 이동하기에 여기에 부가가치 등이 상당히 발생하리라 판단한다.
2013년 KDI가 발표한 흑산도 공항 건설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보면 전라남도에 생산유발 효과는 1535억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645억 원, 고용유발 효과는 1189명, 취업유발 효과는 1266명으로 내다봤다.
수치 부풀리기로 흑산도 공항 사업성 늘리기 꼼수
하지만 실제 공항을 건설한다고 이러한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2013년 발표된 흑산 공항건설 사업 예비타당성조사 시 산출됐던 B/C(비용 대비 편익)는 4.38이었다. 100억 투자하면 438억의 수익을 낸다는 이야기다. 1만 넘으면 사업성 있는 사업으로 판단되기에 이 수치는 매우 이례적인 수치였다. 하지만 이 수치는 곧바로 허구임이 밝혀졌다.
2015년 4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흑산도 공항 예비타당성 조사결과를 두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며 "분석과정 및 사업타당성의 확보도 결여됐고, 적절한 수단 대안 검토 결여 등으로 사업의 적절성을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였다. 그만큼 사업성을 부풀리기 위한 온갖 자료들을 끌어다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이 수치는 2017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변경 보완서'에서는 2.6, 2018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계획변경-재보완서'에서는 1.9~2.8로 내려갔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이렇게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드는 수치를 믿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4대강 사업처럼 통계와 자료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끌어다 쓴다면 모든 사업이 손쉽게 진행된다는 주장이다.
실제 2013년 발표된 B/C 4.38은 항공 수요 예측을 2022년에는 67만 명, 2032년에는 80만 명, 2046년에는 92만 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B/C를 2.6으로 발표한 2017년 보완서에는 항공 수요 예측을 2022년에는 49만 명, 2037년에는 56만 명, 2046년에는 59만 명으로 예측했다.
B/C를 1.9~2.8로 발표한 2017년 재보완서를 보면 항공 수요 예측을 2021년 53만~54만(최소치~최대치), 2035년 59만~64만, 2050년 64만~72만으로 2017년 보완서보다는 다소 높게 잡았다. 하지만 2013년과 2017년 조사결과에서는 GDP 상승을 1.7~4.1%로 잡았던 것과 달리 2018년에는 1.4~3.1%로 GDP 상승을 상당히 낮게 잡았다.
반대 측 "2021년 연 53만 명 이용? 비현실적 예측"
더구나 이렇게 고무줄식으로 산정한 수치들이 실제 맞아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항공 수요 예측은 맞아떨어진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흑산 공항건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한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는 "흑산 공항 건설 사업 관련, 2017년에 발표한 재보완서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연 53만 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며 "하지만 이는 국내 지방공항의 보편적 운항실태를 고려할 때, 비현실적인 예측"이라고 비판했다.
기존 지방공항의 이용률을 살펴보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 <한겨레> 보도를 보면 무안공항의 경우 수요예측대비 실제 이용률은 3.8%, 양양공항은 5.3%에 불과했다. 이에 비춰 윤주옥 대표는 "이와 일반적 비교 시 흑산 공항 역시 과다한 수요를 예측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흑산도 공항건설은 지역주민의 접근성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8년 재보완서를 보면 공항건설 시 선박사의 일 4회 운항이 2~3회 운항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흑산도 및 인근 섬 주민의 73%가 목포를 대상으로 한 주기적 이동과 거주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공항이 건설될 경우, 이들 상당수의 발이 묶이는 셈이다.
윤주옥 대표는 "최근 광주공항의 폐쇄가 결정된 상태에서 '흑산-무안-목포' 선박 이동은 인근 지역의 유일한 노선이 돼 버렸다"며 "공항 건설에 따른 선박 운항 축소는 지역 주민 편익을 증진할 수 없을뿐더러 선박사 수입, 목포 상권 등에 모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상돈 의원 “흑산도 공항, 경제 문제 앞서 안전성 문제 먼저 검토해야”
흑산도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도 문제다.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항공기가 짧은 활주로에서 안전하게 운항이 가능한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며 흑산도 공항의 경제적 문제에 앞서 안전성 문제를 먼저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돈 의원에 따르면 흑산도 공항을 이용할 최적 항공기로 선정된 기종은 ATR 42기종으로 필요한 이륙활주로 길이는 1165m다.(최대이륙무게를 가정) 하지만 사업계획서에는 여기에서 5m 모자란 1160m 표기돼 있다.
5m가 모자란 것은 차치하고라도 1165m는 최적의 기상조건과 적정 이륙 무게, 조종사의 오차 없는 비행을 가정한 경우에 한해서다. 이상돈 의원은 "만석으로 운항하거나 수화물의 총중량이 증가하는 경우, 폭염 기상 또는 활주로 노면이 젖은 상태인 경우에는 이륙에 필요한 활주로 길이는 이보다 더 길어야 한다"며 "또한 조종사의 비행능력도 영향일 미친다"고 분석했다.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서는 활주로 길이가 1165m보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의원은 소형항공기 관련, 국내의 축적된 경험이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이 의원은 “타당성 평가 종합보고서에서는 항공기 운항 관련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며 “흑산 공항 노선에 취항할 항공사의 유무, 취항 항공사의 인적·물적 인프라 등은 밝혀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사업이 시행될 경우, 대한항공 등 메이저 항공사가 아닌, 경험이 부족한 작은 규모의 마이너 항공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의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마이너 항공사는 소형 항공기 운항과 섬 지역 공항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흑산도 공항 건설을 위한) 조사 시점에서 비교한 대상들은 모두 해외 사례이고, 이 또한 대부분 평지에 건설된 소형 공항"이라며 "그에 반해 흑산도는 섬이자 산"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입지 조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공항 건설이 무리하게 추진된다면 대형사고는 예견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흑산 공항에 취항한다는 ATR 42/72 기종은 최근 10년간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국립공원위, 9월 19일 흑산도 공항 건설 재심의
이런 가운데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흑산도 공항 건설 관련해서 '계속 심의'를 결정했다. 한마디로 결정을 연기한 셈이다. 찬반으로 갈리는 쟁점에 대한 추가 확인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인 당시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회의 종료 후 브리핑에서 "사업 타당성 판단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점, 분야별 쟁점에 대한 추가적인 기술적 검토 필요성 등을 고려해 쟁점 사항별로 토론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오는 9월 19일 재심의 개최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재 논란인 여러 쟁점들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재심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폭풍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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