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가 건넨 뇌물액수가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준 뇌물 관련 재판은 지금껏 네 차례 진행됐다. 이 부회장 1, 2심과 박 전 대통령 1, 2심이다.
이재용의 뇌물, 89억->36억->73억->87억
이 부회장 1심 재판(지난해 8월 25일)에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액수가 약 89억 원으로 인정됐다. 최순실 씨의 딸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 관련 뇌물액수가 72억9427만 원이었다. 여기에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 원 등이 더해진 금액이 약 89억 원이다. 그래서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 부회장 2심 재판(올해 2월 5일)에선 뇌물액수가 약 36억 원으로 줄었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은 풀려났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올해 4월 6일)에선, 이 부회장이 건넨 뇌물액수가 72억9427만 원으로 인정됐다. 이 부회장 1심 재판부가 승마 지원 관련 뇌물액수로 인정한 금액과 같다. 다만 이 부회장 1심과 달리, 박 전 대통령 1심에선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 원이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24일 진행된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건넨 뇌물액수는 86억8081만 원이 됐다. 승마 지원 관련 금액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이 모두 뇌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뇌물액수 50억 원 이상, 집행유예 불가능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횡령 및 뇌물액수가 50억 원 이상이면 징역 5년 이상이 선고되며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이 부회장이 그의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당시엔 뇌물액수가 약 36억 원만 인정됐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에서 뇌물액수가 다시 뛰어올라서, 86억8081만 원이 됐다. 24일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 결과가 이 부회장 최종심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다시 구속된다.
1심과 달리 2심에선 제3자 뇌물수수죄 적용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24일 박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2심) 선고 공판에서 삼성의 승마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행위를 뇌물로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던 제3자 뇌물수수죄가 2심에선 적용됐다. 공무원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봤다는 뜻이다. 삼성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 원이 1심과 달리 2심에선 뇌물이 됐다.
'부정한 청탁'과 관련해서 1심과 2심이 엇갈린 대목은 2015년 7월 25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관련성이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독대와 합병 사이에 관련이 없다고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2015년 7월 17일)이 독대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관련이 있다고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합병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의 협조가 필요했다.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승계문제와 합병이 기재된 독대 말씀자료를 박 전 대통령이 보고받았고, 앞으로의 승계작업에도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한 이 부회장은 독대 때 승계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아울러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정상적인 공익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삼성이 알고 있었다는 점, 지원금 액수가 타당한지에 대한 통상적인 검토 절차조차 없었다는 점 등도 판결에 반영됐다.
논리적 결함 지적된 이재용 2심, 그와 다른 박근혜 2심
박 전 대통령이 받거나 받기로 한 뇌물 액수를, 특검과 검찰은 약 433억 원으로 봤었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 213억 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 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 등이다.
승마 지원 금액 213억 원 가운데 72억9427만 원을, 이 부회장 1심과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이라고 봤었다.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뇌물액수가 36억3484만 원이라고 봤는데, 이는 정유라 씨가 탄 말의 가격을 뇌물액수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하지만 논란이 일었다. 설령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고 해도, 정유라 씨가 말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말을 사용한 가치를 계산해서 뇌물액수에 반영해야 한다. 이런 절차가 빠졌으므로, 이재용 2심 재판은 논리적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지적 때문인지, 박근혜 2심 재판부는 삼성이 말을 사는데 쓴 돈 34억1797만 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여기에 더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 원, 승마 용역 대금 36억3484만 원이 뇌물로 인정되면서, 뇌물액수가 86억8081만 원이 됐다.
게다가 승마와 관련해서 차량을 이용한 대가 역시 뇌물로 인정됐다. 다만 이는 금액을 산정할 수 없는, '불상의 이익'으로 판단했다.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인정', '불인정', '인정', '인정'
이번 박 전 대통령 2심 재판에서 이른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이 인정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은 박 전 대통령 1, 2심과 이 부회장 1심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됐고, 이 부회장 2심에선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들 재판을 시간 순으로 배열하면, 이 부회장 1심과 2심, 박 전 대통령 1, 2심 순이다.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은 '인정', '불인정', '인정', '인정' 순서를 거쳤다.
다음 차례인 이 부회장 3심에서도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종범 수업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는 제3자뇌물수수죄 적용과 맞물려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이 설령 이 부회장 재판 2심처럼 정유라 씨의 말 구입비용을 뇌물액수에서 빼도, 뇌물액수가 50억 원을 넘기게 된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뇌물 범죄는 액수가 50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지만,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은 3년 이하의 징역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2심 판결 논리를 받아들이면,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변수는 있다. 양형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고유권한이므로,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가 가능한 형량을 선고하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