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과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가 수차례 만났다고 주장한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21일 검찰에 고소했다. 박 전 위원장은 또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같은 주장을 했던 박태규 씨의 측근 모 씨와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김어준, 주진우씨도 함께 고소했다.
구속 수감 중인 박태규 씨의 측근 모 씨는 지난 해부터 '박 전 비대위원장과 박태규 씨가 2010년 11월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과 나꼼수 진행자들은 이 주장을 옮긴 것이다.
이처럼 저축은행 파문이 끝간 데를 모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저축은행들이 무차별적으로 로비를 펼친 사실이 드러났고, 의혹도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올 12월 대선의 주요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삼화-제일-솔로몬-미래, 무슨 일이 벌어졌나?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은 총 20곳, 부실정리 비용은 20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신호탄은 부산저축은행이 쏘아올렸다. 이미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는 김두우 전 홍보수석을 '관리'했었고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접촉설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이종혁 의원은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 금감원에 부산저축은행 로비 전화를 걸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부산저축은행의 핵심 경영진들이 호남 출신이었던 점을 주목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입길에 오르내린 곳은 삼화저축은행이다. 삼화저축은행은 주로 여권 쪽의 의혹이 많았던 곳이다. 이상득 의원, 이명박 대통령 맏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사위 전종화 나무이쿼티대표, 친이계 공성진 전 의원과 정진석 전 정무수석 등의 연루설이 제기됐었다. 또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회장과 절친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동생 박지만 씨 부부 이름도 등장했다. 박 씨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삼화저축은행 대표를 지낸 바 있다.
제일저축은행은 이명박 대통령 처가와 관련이 깊다. 구속된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은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둘째 언니 남편인 황태섭 씨에게 거액의 고문료를 지급했고, 사촌오빠 김재홍 씨에게는 로비청탁과 함께 수억원대 금품을 제공했다. 김재홍 씨는 구속 수감 중이다. 강원도 출신인 유 회장과 관련해서는 최연희, 이광재, 이화영, 김택기 등 지역 여야 정치인들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결국 삼화저축은행은 우리금융이, 제일저축은행은 KB금융이 인수했다. 두 곳의 수장은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팔성 회장과 어윤대 회장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정치권에선 "이 두곳의 폭발력이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는 곳은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의 임석 회장은 1980년 후반 평민당 외곽 조직인 연청 기획국장을 지낸 전력을 갖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 형제가 출석하는 소망교회 내 금융인 모임 '소금회'의 멤버기도 하다. 임 회장은 고려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 정책대학원 총학생회장, 교우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호남 출신인지라 '고소영'은 못됐지만 '고소'는 된 인물이다.
밀항 기도, 학력 위조 전력 등 영화와 같은 일화로 화제가 되고 있는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과 임 회장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찬경 회장은 서울시 출신으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김 모 선임행정관의 친형에게 거액의 부당이익을 밀어준 의혹도 받고 있다. 청와대는 김 모 행정관을 대기발령시켜놓은 상태다.
"터질 것이 터졌다. 더 남았다"
저축은행 경영진들이 여야와 지역을 막론하고 거액을 뿌리고 다닐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한 정치권 인사는 "저축은행의 전신이 상호신용금고 아니냐. 상호신용금고의 기반은 지역이고, 경영진은 지역유지들이다"면서 "애초에 정치인과 친분이 두터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저축은행이 덩치를 불리면서 각종 PF(프로젝트 파이낸싱), SPC(특수목적법인) 에 집중하지 않았나. PF나 SPC는 인허가나 개발정보를 끼고 들어가면 땅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큰 돈을 버는 것이다"면서 "이 과정에 정치인과 '공생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한 법조인은 "사실 저축은행 경영진이나 오너들은 지역에서나 힘을 쓰는 인물들이었는데 2000년 이후 덩치를 키우면서 중앙 무대로 뛰어들었다"면서 "큰 금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오히려 감시의 눈이 덜하니 위아래로 모럴 헤저드에 빠지면서 '오너'들이 유용할 수 있는 돈의 액수와 폭도 넓었던 것이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경기가 좋을 때야 돈빼서 쓰고 PF성공해서 메꾸는 식으로 굴러갔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그 고리가 끊겨서 줄줄이 일이 터진 것이다"는 해석이 나온다. 요컨대 터질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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