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빙자 간음'을 처벌토록 한 형법 제304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2002년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을 7년 만에 뒤집은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오후 혼인빙자간음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임모 씨 등 2명의 남성이 낸 헌법소원 재판에서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혼인 빙자 간음 조항은 남녀평등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부인하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법률"이라고 위헌 이유를 밝혔다.
이어서 재판부는 "개인의 성행위는 사생활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부분으로 국가는 최대한 간섭과 규제를 자제해야 한다"며 "성적인 사생활의 경우 다른 생활 영역과 달리 형법을 적용하는데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혼인빙자간음죄가 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역시 침해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 일체를 '음행의 상습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보호 대상을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로 한정함으로써 고전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여성부는 지난 9월 공식 입장을 내 "여성을 의사 결정의 주체가 아닌 종속적 존재로 보는 혼인빙자간음죄는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었다. (☞관련 기사 : 여성부 "혼인빙자간음죄 폐지해야")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3인(재판관 이강국, 조대현, 송두환)은 "이 조항이 처벌 대상의 가벌성에 비해 지나치게 무겁다고 볼 수 없고, 남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또 이들은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속이는 행위까지 '보호해야 할 사생활'로 보기 어렵고, 친고죄 조항으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가 유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형법 제304조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서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번 결정으로 1953년 법 제정 이래 56년간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은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된 사건은 많아도, 실제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당장 수혜자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26일 대검찰청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혼인빙자간음죄로 인한 고소 사건은 2004년 762건, 2005년 683건, 2006년 709건, 2007년 585건, 2008년 556건, 올해 들어 285건(7월 기준)이다. 그러나 이들 중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06년 41건, 2007년 33건, 2008년 25건에 불과했고,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같은 기간 각각 10명 이내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