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 지사는 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선생의 종질인 일창 허발과 영천이씨의 3남 1여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2세 때 왕산 선생의 순국으로 수난을 겪다가 여덟 살 때인 1915년에 부모를 따라 서간도로 망명, 17세에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인 이병화 선생과 결혼했다.
당시 시댁은 서간도에서 석주 선생을 중심으로 경학사, 한족회, 신흥무관학교 한족회, 서로군정서 등 항일 투쟁을 위한 단체를 조직 운영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때문에 시댁은 항상 독립운동가들의 회의 장소로 쓰였다. 김동삼과 이청천, 황학수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인물들은 물론 만주를 거쳐 간 많은 독립투사의 의식주 해결에 허은 지사의 공이 숨어있다.
혁명동지인 시할아버지 이상룡과 시아버지 이준형, 남편 이병화 선생의 뒤에는 항상 허은 지사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허 지사는 해방 후에도 독립투쟁의 후유증으로 4남1녀를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고, 남은 아들과 외동딸이 고아원에 보내지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형편이 지극히 어려운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생활고를 이겨가며 자녀와 손자손녀들을 돌보면서 끝내 무너지지 않고 임청각을 지켜냈다.
말년에 독립운동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라는 수기를 출판해 독립투쟁 당시 의식주 등 생활사를 촘촘히 담아냈다.
이 책은 독립운동 당시의 실생활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항일 운동사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