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양기관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영아들. ⓒ연합 |
이렇게 해서 중앙입양정보원으로부터 G코드를 부여 받은 영아들은 국가인구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상 생물학적으로는 출생했어도 우리나라의 시민으로서 사회적/법적 출생은 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혹시라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면 사망에 관한 기록도 남지 않는다. 사람의 출생과 사망을 기재하는 문서인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일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민등록번호도 공식적인 이름도 없이 2개월 혹은 6개월 혹은 1년을 살다가 입양이 되면, 비로소 입양가정으로부터 이름을 부여받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 아이를 낳은 친엄마에 관해서는 기록되지 않는다. 아이의 친엄마가 따로 있음을 밝혀서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하는 것이 합법이고 그것을 일컬어 친양자 등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입양 가정은 이 이 아이를 친생자로 등록한다. 자기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내가 낳은 아이라고 출생신고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친생자로 등록이 된다. 이는 한 인간의 출생에 관한 진실,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은폐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멸이자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알권리를 유린하는 인권침해이다. 출생의 비밀은 이렇게 해서 생산되고, 세월이 흐른 후, 우리는 저녁이면 안방에 앉아 극중 인물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 전능자의 시점을 지닌 시청자가 된다. 다른 사람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아픔과 곤경과 아슬아슬한 비밀 폭로 과정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관음증을 만족시킨다.
사람들은 이 아이에게 입양을 통해서 제공되는 복리에 비하면, 이런 인권침해는 상대적인 것이고 그 복리의 획득을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인권침해가 갑자기 인권침해가 아닌 것으로 돌변하지도 않고, 비밀친생자입양의 불법이 관행이라고 해서 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입양하는 사랑은 이런 인권침해나 불법을 행하지 않으면 실천이 불가능한 것일까? 관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불법을 계속해서 지지해야 하는 것일까? 이 땅에서 이름도 없고 친생가족에 대한 정보도 가질 힘이 없는 아이들, 그래서 G라는 글자 아래 따라붙은 일련번호를 가슴에 품고 잠이 드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 나도 이 아이들과 불과 3~4Km 떨어진 어느 곳에서 잠자리에 들어간다. 지척의 같은 땅에 등을 대고 바람결에 오가는 같은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숨소리도 고르게 잠을 잔다. 나는 내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형제들과 항렬을 나눈 아름다운 이름, 가족등록부에 등재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내 이름은 내게 시민권을 부여한다. 나는 자기의 인권적 존엄을 지킬 권능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아이들은 이름대신 G코드만 있을 뿐이다. G코드만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야만의 시대를 사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귀환입양인단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 대표인 내 친구 제인 정 트렌카와 로스 오크는 지난 해 가을 자기들 주머니를 털어 스위스 제네바에 다녀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의 아동인권을 심사하는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유엔아동권리위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한국에서 출생하는 아동들 중에 비밀친생자입양으로 자신의 존재의 진실을 은폐당하는 아동이 있음을 알리고, 한국 정부가 조속히 아동출생신고제를 아동출생등록제로 바꾸도록 권고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동의 출생등록을 산부인과병원과 조산원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바로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동의 출생 등록을 부모의 자의에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와 유럽의 국가들 대부분은 아동이 병의원에서 출생한 후 72시간 안에 병의원에서 국가출생등록부서에 등록한다. 부모는 다만 그 관공서로 가서 이미 출생등록이 된 문서를 받아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 2011년 국내입양 아동은 1548명, 해외입양아동은 916명, 이들 중에 몇이 G코드인간이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몇 해 전의 국가정책을 담당하는 연구기관의 한 연구에 의하면 국내입양아동의 97%가 비밀친생자입양이라고 했으니, 국내입양아동이거나 해외입양아동이거나 입양되기 이전까지 공식적인 이름이 없이, G코드만을 지녔던 아동이 2천명을 상회했으리라는 짐작은 결코 지나치지는 않으리라.
우리 정부가 '입양활성화'를 위기에 처한 아동복지의 핵심정책 중의 하나로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오늘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기리는 한, 그래서 입양활성화를 위해서는 비밀친생자입양의 관행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힘을 얻는 한, 동시대를 사는 이 땅의 동료 인간에게 6개월이고 1년이고 G코드만을 부여하는 우리의 만행-공정정서부실기재죄-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운영하는 <뿌리의집>과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모임>과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한국한부모연합>은 우리 사회가 입양활성화를 위해 '입양의 날'을 지키기 보다는, 친생가족 보호의 정신을 함양하고, 특히 이 땅의 미혼모들의 자신의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정부가 정한 '입양의 날' 5월 11일을 '싱글맘의 날'로 선포하고 지키고 있다. 이 땅의 아동양육체계가 과도하게 발달한 고아원과 입양기관에서 해답을 찾을 것이 아니라 친생가족양육권 강화를 통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좋은 친구들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의 회원인 미혼모들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면, 또 다른 내 좋은 친구들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의 해외입양인들은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친생부모의 품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정부가 '입양활성화정책'을 폐기하고 '친생가족보호정책'을 힘차게 펼치는 날이 오면, 비록 몇 Km의 거리를 두고 G코드인간, 이름 없는 기호인간과 누운 땅과 흐르는 공기를 공유해야 하는 이 야만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으리라.
###오늘 5월 1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제2회 싱글맘의 날 기념 국제 컨퍼런스가 열린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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